조선왕소설록

세종 - 에피소드 25: 병든 임금, 등 굽은 세자 — 첨사원과 대리청정의 시작

정보알랴주미 2026. 6. 9.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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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 에피소드 25: 병든 임금, 등 굽은 세자 — 첨사원과 대리청정의 시작



세종 24년, 1442년 봄.

경복궁 편전(便殿)의 창호지에 봄볕이 비쳐 들었지만, 임금의 얼굴에는 그 따뜻함이 닿지 않는 것 같았다.

세종이 눈을 찡그렸다. 안질(眼疾). 수년째 그를 괴롭히는 오래된 적이었다. 빛이 강할수록 눈 안에서 불이 타오르는 듯했고, 요즘은 흐린 날에도, 어둑한 방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하들이 올린 문서를 읽으려 하면 글자들이 흐릿하게 번졌다. 스스로 그 누구보다 책을 좋아하고 문자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제 글씨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신하들은 쉽게 짐작하지 못했다.

"전하, 오늘 경연은 잠시 뒤로 미루시는 게 어떻겠사옵니까."

내관 하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세종은 잠시 침묵했다. 경연(經筵), 신하들과 함께 경전을 읽고 정사를 논하는 자리. 왕이 왕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간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 경연을 거른 게 올 들어 벌써 몇 번째인가.

"알았다."

짧은 두 글자가 전부였다. 세종은 눈을 감았다.

풍질(風疾)도 문제였다. 찬 기운이 몸 깊숙이 스며들면 손발이 저리고 관절이 욱신거렸다. 젊은 시절 그렇게 독서를 좋아하고 앉아서 생각하기를 즐겼던 습관이, 이제 몸으로 청구서를 날려 보내고 있었다. 의원들은 조심하라 했지만, 쉰이 넘은 임금에게 조심이란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당대 최고의 의원들이 진맥하고, 팔도에서 약재가 올라왔다. 하지만 세종이 달고 살아온 병의 뿌리는 너무 깊었다. 수십 년간 밤새워 공부하고, 낮에도 쉬지 않고 정사를 처리하며 쌓아 온 피로가 한꺼번에 몸 속에서 터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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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동궁(東宮).

세자 향(珦)은 서책 더미 앞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대신들이 올린 계본(啓本)들이 쌓여 있었다. 세종이 미처 결재하지 못한 서류들이었다. 한 장, 두 장, 아침마다 조금씩 쌓여 가는 그 문서들이 세자에게는 아버지의 신음 소리처럼 들렸다.

경기도 흉작 보고. 야인 침입 대응책. 형옥(刑獄) 심리 결과. 하나하나가 수십, 수백 명의 운명이 걸린 문서들이었다.

"세자 저하, 이번 건은 어떻게 처결하시겠사옵니까?"

시강원(侍講院) 관원 하나가 물었다. 원래 세자의 공부를 돕는 기관이었으나, 요즘은 점점 실무 처리를 함께 의논하는 역할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세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마흔에 가까워지는 나이, 등이 조금 굽어 있었다. 오랜 공부와 근심, 그리고 아버지의 기대를 한 몸에 짊어진 사람의 자세였다. 어릴 때부터 세종이 "이 나라를 물려줄 아이"라고 불렀던 세자는, 그 기대가 기쁨인 동시에 무게였다는 것을 잘 알았다.

"심리를 다시 하라. 형옥은 신중해야 한다. 아버지 전하의 뜻이 그러하셨으니."

목소리는 조용했다. 하지만 단호했다. 세자는 아버지의 방식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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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가을, 세종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첨사원(詹事院).**

세자를 공식적으로 보좌하는 기관을 새로 설치한다는 명이었다. 단순한 교육 기관이 아니었다. 첨사원은 세자가 실질적인 국정을 익히고, 나아가 직접 처결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였다. 대리청정(代理聽政)의 시작이었다.

조정에 술렁임이 일었다.

"전하, 옥체가 잠시 불편하신 것뿐이옵니다. 세자 저하께 정무를 넘기시는 것은 시기상조가 아니겠사옵니까."

황희(黃喜)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여든이 넘은 노재상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세종의 즉위 초부터 곁에 있었던 사람. 그가 누구보다 이 임금을 잘 알았기에, 그리고 그만큼 지금 이 결정이 얼마나 무거운 의미인지 알았기에, 한마디라도 더 해야 했다.

세종은 고개를 저었다.

"황 정승, 내 눈이 보이지 않고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이건 시기상조의 문제가 아니야. 나라의 일은 하루도 멈출 수 없는 법이지."

황희는 더 말하지 않았다. 임금의 목소리에 담긴 무게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체념도, 슬픔도, 그리고 아직 꺼지지 않은 나라에 대한 집착도 모두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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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 허조(許稠)가 세상을 떠났다.

세종이 즉위할 때부터 곁에 있던 대신. 엄격하고 원칙적이며, 때로는 임금과도 정면으로 맞섰던 사람. 그 허조가 눈을 감자, 빈 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졌다.

조정은 조용히 침묵했다.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느꼈다.

"허 대감이 갔구나."

세종은 조용히 말했다.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하지만 방 안에 있던 내관들은 임금의 눈가가 붉어지는 것을 보았다. 이제 황희 하나만 남았다. 세종이 첫눈에 나라의 일을 함께 의논했던 노대신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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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25년, 1443년 봄.

첨사원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세자 향은 이제 매일 서무(庶務)를 결재했다. 대신들이 동궁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는 광경이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4월이 되자,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崔萬理)가 들고 일어섰다.

"전하, 임금과 세자가 함께 정무를 보는 것은 이정(二政), 즉 두 정부를 두는 것이나 다름없사옵니다. 군왕과 세자가 각각 신하의 조회를 받고 각각 서무를 처결한다면, 신하들은 누구를 따라야 할지 혼란스러울 것이옵니다. 이는 결코 나라에 좋은 일이 아니옵니다!"

최만리의 상소는 날이 서 있었다. 그 뒤에는 집현전 학자들 여럿이 이름을 올렸다.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임금에게 정면으로 제동을 건 것이었다.

편전이 잠시 조용해졌다.

세종의 얼굴이 굳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병으로 어쩔 수 없다."

단 여섯 글자였다. 반박도 없었고, 설득도 없었다. 논리도 없었다. 그저 여섯 글자.

하지만 최만리는 더 이상 글을 올리지 못했다. 이 여섯 글자 안에 얼마나 많은 말이 담겨 있는지를, 그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찬란한 업적들을 이루어낸 그 손과 눈이, 이제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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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왔다. 세자 향은 계조당(繼照堂)에서 백관(百官)의 조참(朝參)을 받았다. 조선의 모든 신하들이 세자 앞에 열을 맞추어 서는 광경이었다. 조선 왕조 개창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세자는 그 자리에서도 등이 조금 굽어 있었다.

그리고 그 굽은 등 위로, 아버지 세종의 오래된 꿈이 하나씩 얹히기 시작했다.

한글을 완성하려는 꿈. 역법(曆法)을 정리하려는 꿈. 음악과 예법을 다듬으려는 꿈. 병든 몸 때문에 아직 다 이루지 못한 꿈들이, 이제 세자의 어깨 위로 조용히 옮겨 가고 있었다.

세자는 숨을 고르고, 신하들의 인사를 받았다.

병든 임금이 내려놓는 것들을, 세자가 하나씩 받아 들었다.

그것이 대리청정이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말없는 인계(引繼)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경복궁 어느 깊은 방에서, 아무도 모르게 진행되던 작업이 완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스물여덟 개의 글자들이, 조선의 밤하늘을 막 수놓으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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