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 2년 9월, 경인일.새벽부터 도성 밖 양주 땅에 안개가 자욱하다. 이슬을 머금은 소나무 숲 사이로, 흰옷을 입은 긴 행렬이 산길을 오른다. 앞장선 것은 명정(銘旌)을 받든 관원, 그 뒤로 향정(香亭)과 신백(神帛), 그리고 대여(大轝) — 문종의 관을 실은 거대한 상여가 수십 명의 손에 들려 천천히 나아간다.넉 달 전, 5월의 밤. 강녕전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 임금이 이제 산 자들의 손에 이끌려 마지막 길을 간다. 목적지는 현릉(顯陵). 아버지 세종의 영릉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련된, 문종만의 자리다.행렬 맨 앞, 열두 살 어린 왕 — 단종이 상복 차림으로 걷는다. 곤룡포 대신 삼베로 지은 참최복을 입고, 머리에는 굴건을 썼다. 아직 여름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초가을 산길을 몇 시간째 걷는 어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