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소설록

세종 — 에피소드 19: 갑인자, 활자의 혁명 — 책의 나라가 시작된 날

정보알랴주미 2026. 5. 29.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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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 에피소드 19: 갑인자, 활자의 혁명 — 책의 나라가 시작된 날



세종 16년(1434년), 가을.

경복궁 북쪽 주자소(鑄字所)에 밤새 불이 꺼지지 않았다.

화로 앞에 쭈그리고 앉은 장인 최득강(崔得剛)은 손끝이 타들어 갈 것 같은 열기도 느끼지 못했다. 그의 눈은 오직 하나, 새빨갛게 달아오른 구리 쇳물이 손바닥만 한 거푸집 안으로 흘러드는 그 순간에 고정되어 있었다.

"조심, 조심."

중얼거리는 소리가 타닥타닥 타는 불꽃 소리에 묻힌다. 쇳물이 거푸집 안에 가득 찬다. 최득강은 숨을 멈췄다. 1초, 2초, 3초——

"됐다."

식어가는 거푸집을 집게로 꺼내 물통에 담그자 치이익, 날카로운 증기 소리가 작업장을 가득 채웠다. 연기가 가라앉고 나면, 그곳에는 작은 금속 활자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다.

갑인자(甲寅字). 갑인년에 만든 활자라는 뜻이다.


세종이 처음 활자에 진지하게 눈을 뜬 것은 즉위 초였다. 고려 말부터 이어져 온 계미자(癸未字)가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 조잡했다. 활자 크기가 제각각이라 인쇄면이 고르지 않았고, 글자와 글자 사이 간격도 들쭉날쭉했다. 무엇보다 인쇄 속도가 너무 느렸다.

"하루에 몇 장이나 찍어내느냐?"

어느 날 세종이 공조판서를 불러 물었다. 판서는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예, 전하. 기껏해야 서너 장이옵니다."

"서너 장으로 나라에 책을 보급할 수 있겠느냐."

세종은 혀를 찼다. 집현전에서 학자들이 밤새 연구하고, 의서(醫書)를 편찬하고, 농사직설을 만들어도 그것이 인쇄되어 백성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었다. 지식은 책이 되어야 하고, 책은 사람들 손에 쥐어져야 한다.

"새로 만들어라."

명은 간단했지만, 작업은 방대했다.


이천(李蕆)과 정초(鄭招)가 설계를 맡았다. 활자 크기를 표준화하고, 자획(字劃)을 더 날카롭고 정교하게 다듬었다. 구리와 아연의 배합 비율을 조정해 강도를 높였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활자들이 판 위에서 계속 움직입니다. 인쇄 도중에 틀어지니 글줄이 비뚤어지고 맙니다."

이천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수십 명의 장인들이 한 달째 씨름하던 문제였다. 나무 쐐기로 활자를 고정하는 방법, 끈으로 묶는 방법, 모두 시험해봤지만 완전하지 않았다.

정초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밀랍(蜜蠟)은 어떻겠습니까?"

"밀랍이요?"

"활자를 배열한 뒤 녹인 밀랍을 부어 굳히면, 인쇄 중에 활자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쇄가 끝난 뒤에는 다시 밀랍을 녹이면 활자를 그대로 회수할 수 있습니다."

이천이 눈을 번쩍 뜨며 무릎을 쳤다.

"그거요!"

시험해보니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글자들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인쇄면이 평평하고, 먹색이 고르게 찍힌다. 속도도 놀랍게 빨라졌다.

"하루에 몇 장이나 찍을 수 있겠느냐?"

이천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시험 결과로는 스무 장 이상이옵니다, 전하."

세종의 눈이 빛났다. 다섯 배. 기존보다 다섯 배의 속도로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갑인자가 완성된 날, 세종은 직접 주자소를 찾았다.

신하들이 뒤따르는 가운데 세종은 작업장에 들어서서 수북이 쌓인 활자함 앞에 섰다. 장인들이 일제히 엎드렸지만, 세종은 서두르지 않았다. 천천히 활자 하나를 손에 집어 들었다.

작다. 손톱만 하다. 그런데 그 안에 '仁(인)'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세종은 그것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어질다. 仁.

이 작은 쇳덩이 하나가 책이 되고, 책이 사람의 마음에 심어지면 나라가 달라진다. 어진 임금 한 명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어진 마음을 가진 백성 수만 명이 세상을 바꾼다. 그것이 세종이 그리는 나라였다.

"잘하였다."

세종이 최득강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낮은 목소리였지만, 장인의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임금이 직접 작업장을 찾아와 이름 없는 장인에게 칭찬을 건네는 일은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였다.


그해, 갑인자 완성 외에도 세종의 손은 쉬지 않았다.

지난해에 장영실이 완성해 경회루 남쪽에 설치한 자격루(自擊漏)가 이제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스스로 시각을 알리는 자동 물시계. 종과 북과 징이 정해진 시각에 저절로 울리며 온 궁궐에 시간을 알렸다. 양반이든 내관이든 시각을 통일해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북쪽에서도 소식이 들어왔다. 함길도에서 김종서가 회령(會寧)에 진(鎭)을 설치했다는 보고였다. 6진(六鎭) 개척의 첫 발걸음이었다.

세종은 보고를 받고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두만강 너머 눈 덮인 벌판이 보이는 듯했다. 거기에도 조선의 백성이 살아야 한다. 거기에도 책이 가야 한다.

"우리가 가르칠 수 있는 곳이라면, 모두 조선의 땅이다."


그해 겨울, 갑인자로 찍어낸 첫 번째 서책이 집현전 학자들에게 배포되었다. 활자가 고르고, 먹색이 선명하며, 글자 간격이 일정했다. 학자들은 경탄을 쏟아냈다.

젊은 학자 성삼문이 책장을 넘기며 감탄했다.

"이것은 그냥 책이 아닙니다. 이 아름다운 활자로 우리의 말과 글을 담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말은 의도치 않게 세종의 귀에 들어갔다. 세종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 말이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 씨앗처럼 내려앉았다.

'우리의 말과 글.'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신하들의 반발도 걱정되었다. 하지만 그날 세종은 결심했다. 언젠가 이 활자로, 백성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우리의 글자를 담아내겠다고.


갑인자가 주조된 그해, 조선은 책을 찍기 시작했다. 의서, 농서, 병서, 역사서, 시집. 하루 스무 장, 열흘에 이백 장, 한 해에 수천 장. 지식이 종이 위로 쏟아졌다.

누군가는 "중국에서도 이런 활자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세종은 미소 지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중국과 비교하지 마라. 우리는 우리의 책을 만드는 것이다."

그날 이후, 조선은 '책의 나라'가 되었다.

화로의 불꽃 속에서 태어난 작은 금속 하나. 그것이 세상을 바꿀 줄을, 주자소의 장인 최득강은 알았을까. 아마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세종은 알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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