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 7년(1425), 이른 봄.
예문관(藝文館)의 등불은 늘 밤늦도록 꺼지지 않는다.
그 안에서 가장 늦게까지 붓을 놓지 않는 노인이 있다. 대제학(大提學) 변계량(卞季良).
올해 일흔에 가깝다. 등은 굽었고, 손은 떨린다. 그러나 그 떨리는 손이 쥔 붓끝에서, 조선의 모든 글이 나온다.
명나라에 보내는 외교문서(外交文書). 종묘에 올리는 제문(祭文). 과거(科擧)에 나가는 선비들이 풀어야 할 출제(出題). 나라의 격(格)을 결정하는 글이라면, 끝에는 언제나 이 노인의 손이 닿는다.
젊은 관원이 조심스레 묻는다.
"대감, 이만 쉬시지요. 벌써 자정이옵니다."
변계량이 붓을 멈추지 않은 채 답한다.
"글 한 자가 곧 나라의 얼굴이다. 명에 보내는 표문(表文)에 글자 하나가 거칠면, 천하가 조선을 거칠다 한다. 늙은 손이 떨려도, 글자가 떨려서는 안 된다."
***
같은 무렵, 서운관(書雲觀) 마당.
전혀 다른 종류의 학자가 밤을 새우고 있다. 정초(鄭招).
변계량보다 한참 젊다. 그의 눈은 책이 아니라 하늘에 박혀 있다.
"오늘 밤, 월식(月蝕)이 든다 하였다. 시각이 맞는지 본다."
그가 물시계와 하늘을 번갈아 본다. 예보된 시각, 정확히 그 순간 — 달의 한 귀퉁이가 검게 먹히기 시작한다.
정초가 낮게 탄식한다.
"…반(半) 각(刻)이 어긋났다."
곁의 젊은 관원은 오히려 감탄한다.
"반 각이면 거의 맞은 것 아니옵니까."
"거의 맞은 것은, 틀린 것이다."
정초가 차갑게 잘라 말한다.
"하늘은 거의로 움직이지 않는다. 빌려온 명나라 역법(曆法)으로는, 우리 하늘의 식(蝕)을 반 각씩 놓친다. 언젠가 우리 하늘을 우리 손으로 재야 한다."
***
이듬해 어전. 세종이 두 사람을 함께 부른다.
한쪽에는 굽은 등의 노학자, 한쪽에는 눈매 매서운 젊은 학자.
세종이 빙긋 웃는다.
"내 곁에 두 기둥이 있다. 한 기둥은 글(文)이요, 한 기둥은 실(實)이다. 변 대제학은 조선의 글을 세웠고, 정초는 조선의 하늘과 땅을 재려 한다."
세종이 화제를 돌린다.
"올해, 일본에 통신사를 보낸다. 박서생(朴瑞生)을 보낼 것이다."
신하들이 술렁인다. 세종이 차분히 잇는다.
"가서 그 나라의 물건을 보고 오라 하라. 특히 물을 끌어올리는 수차(水車)와, 돈을 만드는 법을 자세히 보고 오게 하라. 좋은 것이라면, 어느 나라 것이든 우리 것으로 삼는다."
변계량이 가만히 고개를 숙인다. 글의 사람이지만, 그는 이 임금이 글 너머의 것을 본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
그해 봄, 과거(科擧)가 열린다.
전국의 선비들이 한양으로 모여든다. 그들이 풀어야 할 시제(試題) — 그 한 줄을 짓는 것이 변계량의 일이다.
"올해는 무엇을 묻겠나이까."
젊은 시관(試官)이 묻는다. 변계량이 한참 생각하다 한 줄을 적는다.
— 백성을 부유하게 하면서도 그 마음을 잃지 않게 하는 길은 무엇인가.
젊은 시관이 그 글귀를 보고 놀란다.
"…대감, 이는 글재주를 묻는 것이 아니라, 다스림을 묻는 것이옵니다."
변계량이 옅게 웃는다.
"내가 평생 글을 다듬었다만, 글이 글로만 끝나면 죽은 글이다. 선비가 글로 백성을 먹일 줄 알아야, 비로소 산 글이다. 이 임금 밑에서 자랄 선비들이라면, 그쯤은 답할 수 있어야지."
방(榜)이 나붙던 날, 새파란 신진(新進)들의 이름이 줄지어 오른다. 한 시대가, 다음 시대에게 자리를 비워 주기 시작한다.
***
그해 여름, 평안도에 가뭄이 든다.
논바닥이 거북 등처럼 갈라진다. 보고가 잇따라 올라온다.
세종은 친히 기우제(祈雨祭)를 지내겠다 한다.
"전하, 옥체가 상하옵니다. 제관(祭官)을 보내시옵소서."
"백성이 굶는데 임금이 어찌 처소에 앉아 사람을 보내겠는가. 비는 하늘이 내리되, 비는 마음은 임금이 가장 깊어야 한다."
세종이 직접 단(壇)에 오른다. 그 곁에서 김종서(金宗瑞) 같은 젊은 신하들이 임금의 뒷모습을 본다. 새로운 세대가, 늙은 세대의 자리를 조금씩 이어받기 시작한다.
***
세종 10년(1428), 늦봄.
부고(訃告)가 든다.
— 대제학 변계량, 졸(卒).
예문관의 그 등불이, 마침내 꺼졌다.
세종은 한참을 말이 없다. 손에 든 붓을 내려놓지 못한다.
"…내가 즉위한 날부터 오늘까지, 내 이름으로 천하에 나간 글은 거의 그의 손을 거쳤다. 내가 쓴 줄 알지만, 실은 그가 다듬어 준 글이 얼마인가."
세종이 친히 조문(弔文)을 짓겠다 한다. 신하가 만류한다.
"임금이 신하의 글을 친히 지음은 과하옵니다."
세종이 고개를 젓는다.
"한 나라의 글을 평생 짊어진 사람이다. 그 사람의 마지막 글만큼은, 임금이 짓는 것이 마땅하다."
빈소의 흰 등불 아래, 세종이 손수 지은 글을 읽어 내려간다. 목소리가 한 번 잠긴다.
— 글의 한 기둥이, 무너졌다.
***
그러나 무너진 자리에, 다른 기둥이 자란다.
같은 해, 정초가 임금 앞에 한 묶음의 초고를 바친다.
"전하. 각 도의 늙은 농부들을 찾아다니며, 우리 땅에서 곡식을 길러 온 법을 모았나이다. 중국의 농서는 우리 풍토에 맞지 않사옵니다. 우리 땅에는, 우리 농법(農法)이 있어야 하옵니다."
세종의 눈이 빛난다.
"하늘을 재던 사람이, 이제 땅을 적는구나."
"하늘과 땅은 둘이 아니옵니다. 절기를 알아야 씨를 뿌리고, 비를 알아야 거두옵니다. 모두 백성을 먹이기 위함이옵니다."
***
며칠 뒤, 일본에서 박서생이 돌아온다.
그가 가져온 보고는 임금을 흥분시킨다. 물을 스스로 퍼 올리는 수차(水車)의 구조. 구리로 돈을 주조하는 정교한 법. 가뭄에 시달리는 조선에게, 이 수차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세종이 그 그림을 오래 들여다본다.
"변 대제학은 글로 나라의 얼굴을 세웠다. 이제 정초는 농서로, 박서생은 수차로 나라의 배를 채울 것이다. 글이 높아도 백성이 굶으면 헛것이요, 배가 불러도 글이 없으면 짐승과 다름없다."
세종이 두 손을 모은다.
"한 기둥이 무너졌으나, 학문은 무너지지 않았다. 다만, 모습을 바꾸었을 뿐이다."
***
그날 밤.
세종은 변계량이 마지막으로 다듬어 준 표문 한 장을 꺼내 본다. 노학자의 단정한 글씨가 종이 위에 그대로 살아 있다.
그 옆에 정초가 올린 농서 초고를 나란히 놓는다. 흙냄새가 밴, 투박하지만 살아 있는 글씨.
옛 글과 새 실(實)이, 한 책상 위에 나란히 놓인다.
세종이 두 종이를 번갈아 본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한 사람은 글로 평생을 살았고, 한 사람은 땅으로 평생을 살 것이다. 두 길이 결국 한 곳에서 만난다. — 백성."
등불이 길게 흔들린다.
한 시대의 글이 조용히 저물고, 한 시대의 실(實)이 막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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