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소설록

세종 - 에피소드 12: 한 사람도 억울하지 않게 — 형옥의 신중함, 흠휼의 시대

정보알랴주미 2026. 5. 2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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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 에피소드 12: 한 사람도 억울하지 않게 — 형옥의 신중함, 흠휼의 시대



세종 8년, 한겨울이다.

경복궁 강녕전 한 모퉁이가 시커멓게 그을려 있다. 며칠 전 새벽, 화재가 났다. 다행히 큰 피해는 아니었지만, 임금이 잠드는 침전(寢殿)에서 불이 났다는 사실 그 자체가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도승지가 새파랗게 질려 달려왔다.

"전하, 침전을 즉시 옮기시옵소서. 임시 거처를 마련하겠나이다."

"옮기지 않겠다."

세종은 짧게 답한다. 까맣게 그을린 기둥을 한참 바라보다, 손으로 한번 쓸어본다. 손끝에 묻어나는 그을음. 그 검은 가루를 손바닥 위에서 비벼본다.

"불은 어찌 보면 하늘의 경고다.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가, 나로 하여금 돌아보게 하는 신호란 말이다."

신하들은 또 시작이구나, 하는 표정이다. 임금은 작은 사고 하나에도 자기 책임을 들춰 보는 사람이다. 가뭄이 들면 자기 부덕(不德)이라 하고, 홍수가 나면 자기 정치 탓이라 한다. 어떨 때는 답답할 정도다. 그러나 답답함 너머에 묘한 경외심이 일렁인다.

이 임금은 진심이다. 진심으로, 자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날 밤, 강녕전 옆방의 등불이 새벽까지 꺼지지 않는다.

***

세종이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형조에서 올라온 문서다. 정확히는, 전국의 옥(獄)에 갇혀 있는 죄수들의 명부와 그 죄목, 그리고 형량.

종이가 산처럼 쌓여 있다.

"이 자, 곤장 백 대를 맞고 옥에 갇힌 지 이미 두 해가 지났구나. 그런데 아직도 판결이 나지 않았다? 어찌 이런 일이 있느냐."

옆에서 형조 판서가 식은땀을 흘린다.

"송구하옵니다. 증인이 멀리 살아 부르기 어렵고, 사건이 복잡하여…"

"두 해다. 두 해."

세종이 종이를 탁자에 내려놓는다. 소리가 크지 않은데도,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등골이 서늘해진다.

"이 자가 무죄라면, 두 해 동안 옥에서 썩은 그 시간은 누가 갚느냐. 그 어미가 문 밖에서 울고, 그 자식이 굶었을 것 아닌가. 죄가 있다면 빨리 판결하여 벌하고, 죄가 없다면 빨리 풀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냐."

판서가 고개를 들지 못한다.

***

며칠 뒤, 세종은 전국에 교서(敎書)를 내린다. 임금이 직접 붓을 잡고 다듬은 글이다. 이 교서가 조선 형정사(刑政史)에 큰 분기점이 된다.

"형옥(刑獄)은 백성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 옥리(獄吏)는 한 사람이라도 억울하게 옥에 갇히지 않도록 살피라."

핵심은 단 한 줄이다.

— 한 사람이라도 억울하게 옥에 갇히지 않게 하라.

이 한 문장이 전국 군현(郡縣)에 내려가, 고을 사또들의 책상 위에 놓인다. 어떤 사또는 가볍게 읽고 던져둔다. 그러나 어떤 사또는, 한참을 들여다보다 옥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대들의 사연을 한 명씩 다시 들어보겠다."

지방의 작은 옥에서, 이름 없는 백성 몇몇이 풀려난다. 어떤 이는 무릎을 꿇고 흙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운다. 어떤 이는 햇빛이 너무 눈부셔 한참을 손으로 가린 채 서 있다.

***

이 시대 사람들은 이런 정신을 '흠휼(欽恤)'이라 불렀다.

흠(欽), 공경하다. 휼(恤), 불쌍히 여기다.

"형벌을 내릴 때는, 공경하는 마음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신중하라."

세종에게 흠휼은 그저 멋있는 사자성어가 아니다. 그는 이것을 제도로 만들어버린다.

"사형(死刑)은 사람의 목숨을 끊는 일이다. 한 번 베어진 목은 다시 붙일 수 없다. 그러니 사형은 반드시 세 번 다시 살피라."

이른바 삼복법(三覆法)이다.

사형이 결정되면, 한 번 판결하고 끝이 아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 세 차례에 걸쳐 다른 관아에서 다시 검토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임금이 친히 본다.

"백성 한 사람의 목숨이 임금의 손에서 결정된다면, 임금은 그만큼 무거워야 한다."

세종은 사형수의 문서를 받는 날이면 밥을 거른다. 신하가 걱정해 권하면, 묵묵히 한 마디를 던질 뿐이다.

"이 종이 위의 이름이 어제까지 누군가의 아들이었다. 누군가의 아비였다. 내가 어찌 쉽게 먹고 마시겠느냐."

***

같은 해, 강원도와 경기도에 흉작이 든다.

가을 들녘에 곡식이 익지 않는다. 보고가 올라온다. 평년의 절반도 안 되는 수확. 진휼(賑恤), 즉 굶주린 백성을 먹이기 위한 곡식이 필요하다.

호조의 관리들은 곤란해한다. 나라 곳간에도 한계가 있다. 너무 많이 풀면 다음 해가 위태롭다.

세종은 망설이지 않는다.

"풀어라. 충분히 풀어라. 곳간이 비는 것은 다시 채울 수 있으나, 굶어 죽은 백성은 다시 살릴 수 없다."

진휼곡(賑恤穀)이 대대적으로 풀린다. 강원도 산골 마을, 경기도 한구석까지 관곡(官穀)이 실려간다. 어느 노인이 그 곡식 한 됫박을 받아들고 무릎을 꿇은 채 한참을 운다. 그 곁에서 어린 손자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묻는다.

"할아버지, 왜 우세요?"

"…살았다, 이 녀석아. 우리가 살았다."

***

같은 해 북방.

박실(朴實)을 비롯한 무장들이 변경에서 활약한다. 여진족의 작은 침입을 빠르게 막아내고, 변경 백성들의 피해를 최소화한다. 세종은 친히 박실에게 옷과 활을 내린다.

"변방을 지키는 자가 있어야 안에서 형옥을 살피는 일도 가능한 것이다."

칼과 형장(刑杖)은 본디 한 임금의 두 손이다. 한 손으로는 적을 베고, 한 손으로는 백성을 어루만진다. 어느 한쪽만 강해서도 안 되고, 어느 한쪽만 약해서도 안 된다.

***

해가 저문다.

세종은 다시 강녕전 옆방, 그을음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그 작은 방에 앉아 있다. 책상 위에는 또 형옥 문서가 쌓여 있다. 사형 재심 문서다. 한 장, 한 장 — 그는 천천히 읽는다.

이름. 나이. 죄목. 증언. 판결.

어떤 이는 정말 죽어 마땅한 자다. 어떤 이는 — 의심스럽다. 증거가 부족하다. 정황뿐이다.

세종은 그 문서 옆에 붉은 붓으로 적는다.

"다시 살피라."

붓을 내려놓고, 그는 잠시 눈을 감는다.

이 한 줄의 글자가, 내일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릴 것이다. 어쩌면, 살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한 번 더, 살펴는 본 것이다.

— 한 사람이라도 억울하지 않게.

그것이, 세종이 자신에게 내린 가장 무거운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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