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소설록

세종 - 에피소드 10: 친정 첫 해의 동전과 시 — 조선통보가 울리던 봄

정보알랴주미 2026. 5. 18.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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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 에피소드 10: 친정 첫 해의 동전과 시 — 조선통보가 울리던 봄



세종 5년(1423), 정월 초하루.

세종은 그날 처음으로 자기 이름만으로 새해를 맞는다.

아버지 태상왕 태종이 떠난 지 일곱 달.

지난 네 해의 정월에는 늘 둘이었다. 옥좌에 앉은 세종, 그리고 그 뒤에 거대한 그림자처럼 서 있던 상왕.

이번 정월은 다르다.

세종 혼자다.

***

근정전 뜰.

백관이 흰 옷 대신 검은 단령(團領) 차림으로 줄지어 선다. 졸곡(卒哭) 후 첫 새해이므로, 시끄러운 풍악은 줄였다. 그래도 조선이 한 해를 새로 여는 자리다.

"전하께 새해 인사 올립니다."

영의정 유정현이 먼저 절을 한다. 우의정 이원, 좌의정 박은. 그 뒤로 끝없이 이어지는 절의 물결.

세종은 작은 한숨을 삼킨다.

이 절의 물결을 지난 네 해 동안 아버지가 받았다. 그는 그 옆에 서서, 다만 아들로서 그 절을 받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오늘 그 자리에 오직 자기 혼자다.

스물일곱.

조선의 네 번째 왕은 아직 젊다. 그러나 그 젊은 어깨 위에, 비로소 한 나라가 통째로 얹힌다.

***

새해 인사가 끝나고 사흘 뒤.

세종은 호조판서 안순(安純)을 사정전으로 부른다.

"안 판서. 그것을 가져왔는가."

안순이 비단 보자기에서 작은 동전 한 닢을 꺼내 놓는다.

검은 무쇠솥에서 갓 식은 듯한 구리 빛이다. 한 면에 또박또박 새겨진 네 글자.

조선통보(朝鮮通寶).

세종이 그것을 손가락 끝으로 집어 들어 햇빛에 비춰 본다.

"무게는?"

"표준 한 푼(分)이옵니다. 표면이 매끈하고, 글자가 분명하옵니다."

세종은 한참을 동전 한 닢에 골몰한다.

"안 판서. 백성이 이것을 받을까."

안순이 잠시 머뭇거린다.

"…쉽지 않을 것이옵니다. 지금까지 백성은 베와 곡식으로만 거래해 왔으니, 처음에는 의심하고 손사래를 칠 것입니다."

"그렇겠지."

세종은 동전을 두 손바닥에 굴려 본다.

"태조 때부터 저화(楮貨, 종이돈)를 만들었으나 백성은 끝내 외면했다. 종이는 가벼우니 믿지 못한다 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무거운 쇠로 만들었다. 그래도 의심하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하지?"

"…전하."

"법으로 강제로 쓰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백성의 마음을 사는 길은 아니다."

세종이 동전을 천천히 다시 비단 보자기 위에 내려놓는다.

"우선 도성에서 풀어 보자. 관에서 쓰는 비용부터 시범을 보이자. 백성에게 강요하지 말고, 편리를 보여 주자. 한 닢이 한 되 쌀이 되는 자리가 늘면, 그때 그들이 스스로 손을 내밀 것이다."

안순이 깊이 머리를 숙인다.

조선통보. 새 임금이 자기 시대를 향해 던지는 첫 동전이다.

***

그날 오후, 경연.

집현전 부제학 변계량(卞季良)이 책을 펼친다. 그 옆에 노련한 천문관 정초(鄭招), 그리고 아직 젊은 신숙주(申叔舟)의 형 신숙현이 함께 자리한다.

오늘의 책은 《대학연의(大學衍義)》.

변계량이 한 구절을 읽는다.

"…백성이 풍족하면 임금이 어찌 풍족하지 않을 것이며, 백성이 부족하면 임금이 어찌 풍족하겠는가."

세종이 그 구절을 두 번, 천천히 다시 되뇐다.

"백성이 풍족하면 임금이 어찌 풍족하지 않으리오… 변 대제학."

"예, 전하."

"내, 친정의 첫 해에 들고 싶은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신하들이 일제히 귀를 모은다.

"하나는, 화폐의 길을 열어 백성의 거래를 쉽게 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세종이 변계량을 똑바로 본다.

"우리 백성이 우리 땅에서 짓는 농사를 글로 적어 두는 일이다."

변계량이 잠시 그 말의 무게를 헤아린다.

"…농서(農書) 말씀이옵니까."

"그렇다. 명의 《제민요술》, 원의 《농상집요》가 있으나, 그것은 중국 땅의 책이다. 그 땅과 우리 땅이 어찌 같으랴. 우리 백성이 우리 땅에서 직접 시험해 본 것을, 그 시험을 기록으로 남긴 자를 모으고 싶다. 그 기록이 모이면 한 권의 책으로 묶고 싶다."

변계량이 깊이 숨을 들이쉰다.

"정초 — 자네가 이 일에 가장 적임자다."

세종이 천문관 정초를 부른다.

정초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선다.

"신은 본디 천문을 살피는 자이옵니다. 농사는…"

"천문이 곧 농사다. 절기가 곧 농사다."

세종이 단호하게 끊는다.

"하늘을 살피는 자가 곧 땅을 살피는 자다. 자네에게 맡긴다."

정초가 그 자리에 무릎을 꿇는다.

"…삼가 받들겠나이다."

세종은 그 굽힌 등을 잠시 바라본다. 자기도 모르게 옅게 미소가 떠오른다.

조선의 농서가, 그날 사정전의 한 마디로 시작된다. 훗날 그 일에서 《농사직설》이라는 책이 태어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그 이름조차 없는 일이다.

***

저녁.

세종은 강원도 관찰사로 떠나는 황희(黃喜)를 친히 부른다.

황희, 그때 예순한 살. 백발이 성성한 노대신이다. 한때 양녕대군의 폐세자를 끝까지 반대했다가 외방에 좌천되었던 인물. 부왕 태종이 죽기 전 다시 불러올리며 세종에게 당부한 단 한 사람.

"이자만은 곁에 두라."

세종은 그 당부를 잊지 않는다.

"황 경(卿)."

"예, 전하."

"강원도가 흉년에 시달리고 있소. 백성이 풀뿌리로 끼니를 잇고, 곡식을 빌리러 관청 앞에 줄을 선다 하오. 경이 가서, 굶주린 백성을 직접 보고 와 주오."

황희가 백발의 머리를 깊이 숙인다.

"전하. 신이 일찍이 강원의 풍토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더 좋소. 알지 못하는 자가 가야, 마음으로 본다오. 아는 자는 종이로 본다오."

황희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노안의 눈에 미세한 빛이 어린다.

"…삼가 받들겠나이다."

세종은 친히 황희의 손을 잡는다.

"경의 청렴이 강원에 전해지면, 그것이 바로 곳간이오. 곳간을 가지고 가시오, 황 경."

황희의 노안에 한 줄기 눈물이 맺힌다.

자기 시대의 임금이 자기를 알아본다는 것 — 그것보다 더 큰 곳간이 어디 있겠는가.

***

밤이 깊는다.

세종은 사정전 자기 책상 앞에 홀로 앉는다.

책상 위에는 세 가지가 놓여 있다.

오른쪽에는 낮에 본 조선통보 한 닢.
가운데에는 백지의 농서 초고 — '제도 농민의 경험을 받아 적는다'고 첫 줄에 적혀 있을 뿐이다.
왼쪽에는 시집 한 권.

시집은 부왕 태종이 생전에 즐겨 읽던 두보(杜甫)의 것이다.

세종이 그 시집을 천천히 펼친다.

펼친 자리에 마침 이런 구절이 있다.

—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나라는 깨어져도 산하는 그대로 있고, 성에 봄이 오니 풀과 나무가 깊다.)

세종은 그 구절을 한참을 본다.

그리고 작은 종이에 자기 시를 한 수 적는다. 그 시는 훗날 어디에도 남지 않고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날 밤 그가 종이 위에 적은 것은, 임금의 일도, 동전도, 농서도 아닌, 다만 한 아들의 마음일 것이다.

— 아바마마, 제가 시작합니다.

세종은 그 종이를 접어 시집 갈피에 끼운다. 그리고 오른쪽의 동전을, 가운데의 농서 초고를, 차례로 손등으로 가만히 만진다.

조선통보가 흔들린다. 농서의 빈 페이지가 펄럭인다. 시집의 책장이 봄 바람에 한 장 넘어간다.

스물일곱의 임금이 자기 시대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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