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소설록

세종 - 에피소드 7: 아버지의 마지막 숨결 — 태상왕 태종, 56년의 삶을 마감하다

정보알랴주미 2026. 5. 1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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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 에피소드 7: 아버지의 마지막 숨결 — 태상왕 태종, 56년의 삶을 마감하다



세종 4년, 1422년의 봄은 유난히 더디게 흘러간다.

한양의 새 궁(新宮). 침전 안엔 약 달이는 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 어의 일고여덟이 번갈아 들고 나지만, 누구의 얼굴에도 희망의 빛은 보이지 않는다.

침상에 누운 사람은 태상왕(太上王) 이방원. 한때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치르고 형제를 베어 왕좌를 거머쥐었던 그 사내. 외척을 도려내고 사병(私兵)을 혁파하며 조선의 뼈대를 세운, 그 무쇠 같던 사내가 지금은 마른 갈대처럼 누워 있다.

"전하…… 이번에도 잠시 차도가 보이실 겝니다."

영의정 유정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위로해 보지만, 곁에 선 세종의 표정은 굳어 있다. 세종 — 한때 충녕대군이라 불리던 셋째 아들. 형 양녕을 제치고 왕위에 올랐을 때, 가장 두려워했던 순간이 지금 다가오고 있다.

"내가 직접 달이리라."

세종이 도승지에게서 약사발을 받아 든다. 지난 한 달, 그의 옷고름은 한 번도 풀린 적이 없다. 잠은 부왕(父王)의 침상 옆에서 쪽잠으로 때웠고, 식사도 굳이 침전 가까이에서 했다. 신하들이 눈물로 진찬(進饌)을 청해도 그는 한 입 들었다 놓을 뿐이다.

"전하, 옥체를 상하시오니……"

"아바마마께서 천하를 들고 일어서실 때, 내 무엇을 했더냐. 책이나 읽고 있었지. 이제 와서 약 한 그릇도 못 올리겠느냐."

세종의 목소리에 가시가 돋는다. 신하들은 고개를 숙인다.

***

5월 초이튿날.

태종의 병세가 갑자기 깊어진다. 의관들이 별자리를 살피며 길흉(吉凶)을 점쳐 보지만, 답은 한결같다. 변정현, 김자지, 정종본 — 이름난 술사(術士)들이 다투어 입궁하지만 아무도 차마 입을 열지 못한다.

"신불(神佛)께 빌어 보시지요."

좌의정 이원이 다급히 청한다. 흥천사, 승가사, 개경사 — 한양의 큰 절마다 약사정근(藥師精勤)이 베풀어진다. 정승들이 직접 사찰로 달려가 향을 사른다. 평생 부처를 멀리하고 절을 줄여 온 태종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를 살리기 위해 모든 신을 부른다.

"기도는 잠시 미루어라."

세종이 단호하게 명한다.

"대신, 모반대역(謀反大逆)과 부모를 죽인 자, 주인을 죽인 노비를 제외한 모든 죄인을 사면하라. 아바마마께서 좋아하실 것이다."

대사면령. 새벽이 채 밝기도 전에 지인(知印)들이 말을 달려 전국으로 떠난다. 옥문이 열리고, 죄인들이 제 발로 절을 올리며 태상왕의 만수무강을 빈다.

***

5월 초나흘.

태종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해 거처를 옮긴다. 종묘 가까운 연화방(蓮花坊) 신궁(新宮)으로. 병 깊은 곳을 피한다는 옛 풍습이다.

가마가 천천히 움직인다. 세종은 가마에 오르지 않는다. 도성 한복판을 — 임금이 — 도보로 걷는다. 곤룡포 자락이 흙먼지에 더럽혀지지만 그는 멈추지 않는다. 모든 왕자들이 그 뒤를 따라 걷는다. 백성들이 길가에 엎드려 호곡한다.

"전하, 부디 가마에라도……"

"아바마마께서 가마를 타시는데, 자식이 어찌 가마를 타랴."

침전이 옮겨진 그날 밤, 세종은 옷을 갈아입지 않는다. 눈도 감지 않는다. 약사발이 식을세라 직접 데우고, 태종의 손을 잡아 온기를 나눈다.

***

5월 초열흘. 병인일(丙寅日).

새벽녘. 세 사람이 안다. 어의도, 세종도, 태종 자신도.

"주상…… 거기 있느냐."

태종의 목소리가 가늘다. 평생 천둥 같던 그 목소리가.

"예, 아바마마.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너를 너무 늦게 알아보았더냐."

"아닙니다. 아바마마. 모든 것이 아바마마의 뜻 덕분입니다."

태종이 웃는다. 마지막일 그 웃음이.

"양녕을…… 미워 마라. 그 아이도 내 자식이다. 네 형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심온의 일은…… 내가 했다. 네가 한 것이 아니다. 그 짐을 짊어지지 마라."

세종의 어깨가 흔들린다. 처남 심온 — 자신이 즉위하자마자 외척이 된 죄로 태종의 손에 죽은 사내. 평생 가슴에 박혀 있던 못이 지금 뽑혀 나간다.

"……아바마마."

태종이 천천히 눈을 감는다. 56년의 삶이, 두 차례의 난(亂)이, 사병 혁파와 호패법(號牌法)이, 명나라와의 외교가, 그 모든 것이 한 줄기 숨에 실려 빠져나간다.

"태상왕 승하(昇遐)요!"

내관의 목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른다.

***

세종은 머리를 풀어 헤친다. 신발을 벗는다. 맨발로,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그 자리에 엎드려 운다.

"아바마마……! 아바마마……!"

백관이 무릎을 꿇는다. 통찬(通贊)의 신호에 따라 열다섯 번 곡소리를 올린다. 그러나 누구의 입에서도 의례에 맞춘 곡소리만 나오지 않는다. 진짜 통곡이다. 의례를 진행하던 집례관조차 절차를 잊는다. 궁에 들어선 노복들까지 비통하게 흐느낀다.

이것이 — 조선 제3대 임금 태종의 마지막이다.

***

장례 준비가 시작된다.

곡산부원군 연사종이 수릉관(守陵官)으로 임명된다. 좌의정 이원과 우의정 정탁이 국장도감(國葬都監) 도제조를 맡는다. 빈전도감, 산릉도감 — 세 도감(都監)이 동시에 움직인다.

"전하, 진죽(進粥)이라도 드시옵소서."

정승들이 거듭 청한다. 그러나 세종은 사흘째 곡기를 끊는다.

"내가 어찌 음식을 들겠느냐."

"성인의 가르침에 '죽은 자로 산 자를 상하게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부디……"

세종이 마침내 묽은 죽 한 모금을 든다. 하루 한 번. 그것이 전부다.

그 사이, 궁 안에선 또 다른 일이 벌어진다. 의빈(懿嬪) 권씨와 신녕궁주(愼寧宮主) 신씨가 — 세종에게 알리지도 않고 — 머리를 깎는다. 비구니가 되어 태종의 명복을 빌겠다는 것. 후궁들이 다투어 삭발한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범패(梵唄) 소리가 궁궐을 울린다.

"막을 수가 없다. 그분들의 마음을 누가 막으랴."

세종이 한숨 짓는다.

***

대간(臺諫)의 상소가 빗발친다.

"양녕대군을 외방으로 돌려보내소서. 종사(宗社)의 대계(大計)를 위해서라도……"

부왕이 떠나자마자 시작되는 정치다. 양녕은 이미 광주에서 또 한 번 도망쳤다는 보고가 들어와 있다. 태종이 살아 있을 때조차 그를 어쩌지 못했는데, 이제 그 그늘마저 사라졌으니.

세종은 답한다.

"내 형이다. 아바마마의 마지막 말씀이 무엇인지 너희가 아느냐."

신하들이 침묵한다.

"형을 미워 말라 — 그것이 아바마마의 유언이다. 양녕은 광주에 있을 것이다. 더는 거론치 마라."

***

빈전(殯殿) 위에 명정(銘旌)이 세워진다. 진금(泥金)으로 전서(篆書)하여 적힌 글자.

『상승성덕신공태상왕재궁(上昇聖德神功太上王梓宮)』

이것이 태종의 묘호(廟號)다. 성덕(聖德)과 신공(神功) — 거룩한 덕과 신묘한 공. 그를 평가하는 두 단어다.

세종은 그 명정 앞에 매일 새벽 절을 올린다.

조선 제3대 임금 이방원. 형제를 베고 왕좌를 차지했지만, 그 피의 대가로 조선의 골격을 세웠던 사내. 사병을 거두고, 외척을 다스리고, 명나라와의 사대(事大) 노선을 확립했던 사내. 신불(神佛)을 멀리하고, 사찰의 노비와 토지를 거두어 국고를 채웠던 사내.

그 사내가 떠나간 자리에 — 이제 한 사람이 남았다.

세종.

부왕의 그늘에서 4년을 살아온 임금. 이제부터는 자기 자신의 시대를 살아야 한다.

"아바마마……"

빈전 앞에서 세종이 마지막으로 입을 연다.

"아바마마께서 세우신 나라를, 제가 끝내 백성의 나라로 만들겠습니다."

명정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린다. 마치 답하듯이.

— 세종 4년 5월. 한 시대가 저물고, 또 한 시대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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