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소설록

세종 - 에피소드 8: 헌릉으로 가는 길 — 비를 맞으며 떠나보낸 절대권력

정보알랴주미 2026. 5. 14. 13:36
반응형

세종 - 에피소드 8: 헌릉으로 가는 길 — 비를 맞으며 떠나보낸 절대권력



세종 4년, 1422년 6월.

빈전(殯殿)의 향불은 꺼지지 않는다. 사흘에 한 번 갈리는 향초, 매일 새로 올려지는 제찬(祭饌). 그 모든 의례를 손수 점검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임금이다.

"전하, 진죽이라도 한 술 드시지요."

대전 상선이 떨리는 목소리로 청한다. 세종의 광대뼈가 한층 도드라져 있다. 부왕이 승하한 지 한 달, 그는 묽은 죽 몇 모금 외엔 거의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

"내가 먹으면 아바마마의 신령이 슬퍼하실 게다."

"하오나, 옥체 상하시면 종묘사직이 흔들립니다."

"……그래. 알았다. 한 술만 들지."

세종이 죽을 입에 가져간다. 그러나 두 번째 숟갈은 다시 내려놓는다.

***

같은 달, 대신들이 부복(俯伏)한 채 시호(諡號)와 묘호(廟號)를 올린다.

"태상왕께서는 두 차례 사직을 안정시키시고, 사병(私兵)을 혁파하시며, 제도를 세우셨습니다. 그 공덕을 '성덕신공(聖德神功)'으로 추존(追尊)함이 마땅하옵니다."

"……그리하라."

태종(太宗) — 묘호가 정해진다. 종묘에 들어갈 셋째 자리. 신주(神主)는 새겨지고, 글자 하나하나에 56년의 풍파가 담긴다.

이어 산릉(山陵) 자리가 논의된다.

지관(地官)들이 한양 사방을 살핀 끝에 광주(廣州) 대모산(大母山) 자락을 점친다. 한양에서 오십여 리. 남한강이 굽이쳐 흐르고, 백호(白虎)와 청룡(靑龍)이 그림처럼 둘러싼 명당. 능호(陵號)는 — 헌릉(獻陵).

"한양과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자리입니다. 전하께서 종종 친히 임어(臨御)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좋다. 그곳으로 한다."

세종이 짧게 답한다. 그러나 신하들은 안다. 그 짧은 한마디 안에, '평생 자주 찾아뵙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음을.

***

7월. 광주의 들판은 흙먼지로 뒤덮인다.

수만 명의 역군(役軍)이 동원된다. 도성 부근의 장정(壯丁), 경기·충청의 군졸, 노복(奴僕)에 이르기까지 — 한여름 땡볕 아래 곡괭이가 흙을 파헤친다. 능역(陵役)은 곧 백성의 짐이다. 한 사람의 죽음이 만 사람의 땀이 된다.

세종은 알고 있다. 그래서 직접 술과 떡을 보낸다.

"역군 한 사람당 술 한 잔, 고기 한 점씩 돌려라. 한낮엔 일을 쉬게 하라. 사람이 죽으면 곡(哭)도 못 할 일이니, 노역(勞役) 중에 사람을 잃지 말라."

도승지가 어명을 받든다. 그날 광주 들판엔 임금이 보낸 술독이 즐비하게 늘어선다. 한 역군이 잔을 들며 말한다.

"주상께서는 부왕만 사랑하시는 게 아니라, 우리 같은 천한 것들도 잊지 않으시는구나."

옆 사람이 코를 훌쩍인다. 비록 한 잔 술이지만, 임금의 마음이 거기에 담겨 있다는 걸 그들은 안다.

***

그 무렵, 또 다른 소식이 궁에 닿는다.

"전하…… 양녕대군께서 또 광주에서 거처를 벗어나셨습니다."

세종이 잠시 눈을 감는다.

양녕 — 폐위된 형. 한때 세자였던 그 사내. 아버지가 돌아간 그 슬픔의 한가운데에서, 형은 또 술을 마시고, 또 사냥을 다니고, 또 어디론가 도망쳐 버렸다.

"……찾아오너라. 단, 묶지 말고, 욕보이지 말고, 정중히 모셔 오너라."

"전하, 대간(臺諫)에서 양녕을 외방(外方)으로 영영 추방하라 청합니다. 부왕 빈전 곁에서까지 이러시니, 그 죄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세종이 천천히 고개를 든다.

"아바마마께서 마지막에 무어라 하셨더냐. 양녕을 미워하지 말라 하셨다. 형은 형이다. 내가 임금이라 해서 그 말씀을 거스를 수는 없다."

"……."

대신들은 침묵한다. 세종의 눈가에 물기가 비친다.

***

8월. 명나라 사신이 도착한다.

황제의 부의(賻儀)를 받들고 온 사신단. 비단과 향, 그리고 황제의 조위(弔慰) 칙서. 세종은 흰 상복(喪服) 차림으로 모화관(慕華館)까지 걸어 나가 그들을 맞이한다.

"폐하의 두터운 은혜, 만 번 절하옵니다."

사신이 칙서를 펼친다.

"태상왕의 평생 공로를 들으니, 짐(朕)이 또한 슬프도다. 조선을 잘 다스려 선왕의 뜻을 이어 가라."

세종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진다. 그것은 명 황제에 대한 예가 아니다. 아바마마의 일생이, 외방의 황제에게까지 인정받는 그 순간에 대한 — 자식의 자부심이다.

***

9월. 발인(發靷)의 날.

아침부터 하늘이 무겁다. 어둑한 구름이 한양 위를 덮는다. 곧이어 빗방울이 떨어진다. 가는 가을비, 그러나 멎지 않는 비.

운구 행렬이 광화문을 나선다. 만장(輓章)이 비에 젖어 무겁게 늘어진다. 상여(喪輿)를 멘 역사(役士)들이 어깨를 굳히고, 백관(百官)이 그 뒤를 따른다.

그리고 — 임금이 걷는다.

다시, 도보(徒步)로.

흰 상복 자락이 진흙에 더럽혀진다. 신하들이 거듭 가마를 청하지만 그는 거절한다.

"아바마마께서 마지막으로 한양을 떠나시는 길이다. 자식이 어찌 가마에 올라타랴."

행렬이 도성을 빠져나간다. 한강 나루에서 큰 배에 운구가 옮겨진다. 강 건너 광주 땅으로. 비는 멎지 않는다. 강물도 비를 받아 검게 일렁인다.

길가에는 백성들이 엎드려 있다. 어떤 이는 통곡하고, 어떤 이는 그저 손을 모은다. 한때 이방원이라 불리던 사내, 두 차례 칼을 휘둘러 왕좌를 거머쥔 사내, 그러나 결국 백성에게 호패(號牌)와 평안을 안긴 사내가 — 비 내리는 길을 따라 떠난다.

***

헌릉에 안장(安葬)된다.

마지막 흙이 봉분 위에 덮이는 순간, 세종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다. 빗물이 곤룡포 위로 흘러내린다.

"아바마마…… 편히 가십시오."

우주(虞主)를 모셔 환궁한다. 종묘에 신주가 모셔지고, 졸곡(卒哭) 의례가 시작된다. 백 일간의 곡(哭)이 끝나는 그 순간 — 세종은 마침내 한 명의 자식에서, 한 명의 임금으로 일어선다.

***

그 밤. 편전(便殿) 깊은 곳.

세종이 홀로 앉아 붓을 든다. 친정(親政) 첫 명을 적는다. 호패법 보완, 토지 재조사, 변경 방비 점검, 집현전 학자 확충 — 한 글자 한 글자가 단호하다.

상왕은 없다. 더 이상 그림자도 없다.

다만 그 자리에 — 한 사내가 남았다.

"……이제부터다, 아바마마."

먼 곳에서 비가 그친다. 헌릉 위로, 새벽 별이 비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