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 2년의 늦가을, 한양은 단풍보다 먼저 사냥의 소문으로 물들었다.
수강궁의 늙은 호랑이가 다시 활을 잡았다는 것이었다. 상왕 태종은 광주(廣州)로 사냥을 나갔고, 시위(侍衛) 수백을 거느렸으며, 손수 노루 두 마리를 잡았다 했다. 활시위는 옛 시절 그대로였고, 말몰이 솜씨는 청년 시절 압록강을 누비던 그 솜씨라 했다. 시정의 백성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수군거렸다.
"상왕께서 정정하시다는데."
"그럼 누가 진짜 임금이라는 게야?"
세종은 그 말을 편전에서 들었다. 별감 하나가 외부의 풍문을 조심스레 보고했고, 신하들의 눈은 흘끔, 임금의 표정을 살폈다. 세종은 다만 종이 위에 가지런히 붓을 놓았다.
"아바마마께서 건강하시면 그것이 사직의 복이다. 풍문을 굳이 막을 것은 없다."
말은 담담했으나, 그날 밤 침전의 불은 오래도록 꺼지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그는 오래 천장을 바라보았다. 즉위한 지 두 해. 자신이 결정한 일은 무엇이었던가. 자신이 책임진 일은 또 무엇이었던가. 가슴 한쪽이 답답해질 때마다 그는 손바닥으로 그 자리를 가만히 눌렀다.
그해 겨울, 세종은 군사 사열에 직접 나갔다. 변방의 군량을 점검했고, 무사들의 활쏘기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말했다.
"주상께서 친히 점검하셨다지만, 군사권은 상왕 손에 있지 않은가."
그것은 사실이었다. 즉위 두 해째, 임금은 안에 있고 군주는 밖에 있는 셈이었다. 세종은 그 말을 듣고도 화내지 않았다. 다만 마음 깊이 한 줄을 새겼다.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임금은 사실을 바꾸지도 못한다.
***
해가 바뀌었다. 세종 3년(1421) 정월 초하루.
근정전의 새해 하례가 끝난 뒤, 세종은 집현전 학사들을 따로 불렀다. 정인지, 변계량, 신석조… 아직 이름이 무겁지 않은 젊은 학자들이 머리를 조아렸다.
세종은 그들 앞에 두꺼운 책 한 권을 내려놓았다. 《자치통감(資治通鑑)》이었다.
"짐이 이 책을 매일 한 권씩 읽고 있다."
"전하, 그 분량을 매일이라니… 옥체가 상하실까 두렵사옵니다."
"옥체는 짐의 것이지만, 백성은 짐 한 사람의 것이 아니지 않으냐. 짐이 모자란 만큼 책에서 빌려와야 한다."
세종은 책장을 천천히 넘겼다.
"송나라 사마광이 말했다. 임금이 역사를 알면 거울을 가진 것과 같다고. 짐은 거울이 부족했다. 그래서 변방이 무너졌고, 백성이 굶었다."
학사들이 숙연해졌다. 정인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전하, 신들이 부족한 곳을 채우겠나이다."
"채우는 것보다 묻는 게 먼저다. 짐이 너희에게 묻겠다. 조선이 고려의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가져와야 하느냐."
질문은 깊었고, 답은 길어졌다. 그날 경연은 해가 기울도록 끝나지 않았다. 어린 학사들은 처음으로, 임금이 자기들에게 답을 가르치러 온 것이 아니라 함께 찾으러 왔다는 것을 알아챘다. 변계량은 그날 일기를 적었다. "주상께서 우리에게 신하의 자리를 주신 것이 아니라, 스승의 자리를 주셨다."
***
봄이 무르익을 무렵, 세종은 첫 번째 독자적 결단을 내렸다.
예조에서 상복과 제례 제도를 새로 정비하자는 글이 올라왔을 때였다. 종래의 제도는 고려식과 원나라식이 뒤섞여 있었다. 어떤 집은 백일 동안 곡(哭)을 했고, 어떤 집은 사흘 만에 잔치를 벌였다. 백성들은 누구를 따라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했다. 세종은 직접 붓을 들었다.
"유교의 예(禮)로 통일하라. 다만 백성에게 무리한 부담이 되지 않도록 간소하게."
이어서 도첩제(度牒制)에 대한 명도 내렸다. 출가하는 승려에게 나라가 증명서를 발급하는 제도. 그동안 형식적으로 운영되어 사찰마다 승려가 넘쳐났다. 군역과 부역을 피하려 머리를 깎는 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심사를 엄히 하라. 출가는 신앙의 길이지, 부역을 피하는 문이 아니다."
부드러운 명이었지만 단호했다. 사대부들이 환영했고, 일부 사찰은 술렁였다. 신하들은 이 결정이 누구의 뜻이냐 물었다. 어떤 이는 상왕의 뜻이라 짐작했고, 어떤 이는 임금의 독단이라 했다.
세종은 어전회의에서 분명히 말했다.
"이 일은 짐이 책을 읽고, 짐의 마음으로 정한 것이다."
처음으로, 그의 목소리에 서늘한 결이 잡혔다. 좌의정이 고개를 들어 임금을 바라보았다. 임금의 눈동자에 한 해 전에는 없던 빛이 있었다.
***
그날 저녁, 세종은 수강궁으로 향했다.
태종은 화로 앞에서 약을 마시고 있었다. 가을 사냥 이후 다시 자리에 누웠다 일어났다 하는 날이 잦아졌다. 그러나 눈빛만은 여전히 칼이었다.
"주상, 도첩제 일을 들었소."
"예, 아바마마."
"신하들이 짐에게 와서 말리라 하더이다."
세종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아바마마, 부족하면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나 결정은 제가 했으니, 책임도 제가 지겠습니다."
태종은 잠시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한 해 전, 변방의 보고에 입술을 떨던 그 청년이 아니었다. 화로의 잉걸불이 탁, 하고 튀었다.
늙은 호랑이는 천천히 약사발을 내려놓더니, 짧게 웃었다.
"…그래야지. 임금이 둘일 수는 없는 법이오."
말은 짧았지만, 그것은 양보였다. 평생 칼을 쥐고 살았던 사람이 처음으로 손을 폈다. 평생 무엇 하나 양보한 적 없던 사람이었다. 형제도, 처가도, 공신도 베어 낸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아들 앞에서만큼은 칼을 내려놓았다.
세종은 깊이 머리를 숙였다. 무엇이 안에서 차오르고 있었다. 두려움도, 슬픔도, 안도도 아닌 — 단단한 무게 같은 것. 아버지가 손을 폈으니, 이제 그 무게는 자신이 들어야 했다.
"…아바마마, 황송하옵니다."
"황송할 일이 아니오. 다만 한 가지만 명심하시오. 임금의 결단은 백성의 목숨이오. 늦어도 안 되고, 가벼워도 안 되오."
***
오월, 세종은 전국에 토지 조사령을 내렸다.
권세가의 사장(私莊)이 어디까지 뻗었는지, 누가 누구의 땅을 빼앗았는지, 백성은 몇 마지기로 한 해를 사는지 — 임금이 모르고서는 정치를 할 수 없다 했다. 함께 수령들의 부정부패 감찰도 강화되었다. 잘한 수령에겐 상을, 못한 수령에겐 파직을. 칭찬에도 처벌에도 임금의 이름이 또렷이 적혔다.
신하들은 알아챘다. 이제 결재의 마지막 줄에 찍히는 도장이, 진짜로 임금의 것임을.
집현전의 등불은 새벽까지 꺼지지 않았다. 학자들은 임금이 던지는 질문을 받기 위해 책 더미 속에 앉아 있었다. 세종은 종종 새벽녘에 친히 집현전 문을 두드렸다. 학사들은 놀라 일어났고, 임금은 미안한 얼굴로 다만 책 한 권을 내밀곤 했다.
"이 구절이 마음에 걸려 잠이 오지 않았네. 함께 보세."
학사들은 그 새벽의 임금을 두고두고 잊지 못했다. 곤룡포 자락에 묻은 먹물, 손가락 끝의 굳은살, 그리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들리는 작은 한숨. 어떤 임금이 책 한 줄 때문에 잠을 못 이루는가. 어떤 임금이 학사의 방문을 손수 두드리는가.
그렇게 한 해가 흘러갔다.
여전히 수강궁에는 늙은 호랑이가 있었고, 변방의 파도는 멈추지 않았고, 백성의 살림은 가난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누가 진짜 임금이냐고.
세종 3년의 끝자락, 차가운 밤바람 속에서 임금은 등불을 켠 채 책장을 넘겼다. 창밖으로는 달이 떠 있었고, 멀리 수강궁의 처마 끝에도 같은 달빛이 내려앉고 있었다. 같은 달이, 두 임금의 머리 위를 비추고 있었다. 하나는 저물어 가고, 하나는 떠오르고 있었다.
아버지의 그늘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 그늘 옆에 자기 발로 선 또 하나의 사람이 생겨났을 뿐이었다. 세종 3년의 겨울이 그렇게 깊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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