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소설록

태종 - 에피소드 10: 상왕의 마지막 불꽃 — 세종에게 왕좌를 물려주다

정보알랴주미 2026. 5. 6. 10:44
반응형

태종 - 에피소드 10: 상왕의 마지막 불꽃 — 세종에게 왕좌를 물려주다



## 태종 18년 7월, 개경(開京).

하늘이 말라붙었다.

논바닥은 갈라지고, 우물은 밑이 드러났다. 가뭄이 한 달을 넘기자 조정 대신들은 제각각 하늘 탓을 했다. 흥복사와 연복사에는 승려들이 모여 비를 빌었고, 명통사에는 맹인들이 꿇어앉아 정근(精勤)을 드렸다. 누군가는 박연(朴淵) 폭포에 호랑이 머리를 가라앉혀 용왕을 달래기도 했다.

그러나 비는 오지 않았다.

수강궁(壽康宮) 별전, 상왕 이방원은 창밖을 내다보며 말없이 앉아 있었다. 왕위를 아들에게 넘긴 지 이제 석 달.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는 여전히 등이 곧고, 눈빛은 차가웠다.

"구언(求言)의 명을 내렸느냐?"

좌우를 돌아보지도 않고 묻는 목소리가 낮고 무거웠다. 승지 하나가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예, 상왕 마마. 정부·육조·대간 각사에 명을 내려 시정의 잘못을 아뢰게 하였사옵니다."

이방원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뭄은 하늘의 경고다. 제왕학의 첫 장에서 배운 것이었다. 하늘은 군주의 실정(失政)에 재변으로 답한다. 지금 조선의 임금은 그의 셋째 아들, 충녕이었다. 하지만 가뭄을 책임질 군주가 누구인지 — 조정은 물론이거니와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군국의 대권은 여전히 내 손에 있다.*

***

열흘 뒤, 상왕은 한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신하들이 의견을 올렸다. 더위가 남아 있으니 9월이 좋겠다, 10월 말이 낫겠다, 저마다 달랐다. 그러나 영돈녕부사 류정현과 병조판서 박신이 무릎을 꿇고 간했다.

"양도(兩都) 사이를 오가는 신민의 폐해가 이루 말할 수 없사옵니다. 7월 농한기에 환도하시어 신민의 바람에 답하소서."

이방원은 그 말이 맞다고 여겼다. 더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개경에 머문 것은 딸 성녕공주(誠寧公主)의 죽음으로 마음이 상했기 때문이었다. 아비로서 그 자리를 떠나기가 싫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슬픔도 사치다.

"이달 19일을 기해 한양으로 돌아간다."

명이 떨어지자 조정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

## 태종 18년 8월, 한양.

창덕궁에 인정전(仁政殿)을 다시 짓고 있었다.

상왕은 인덕궁(仁德宮)에 문안을 드리러 가는 길에 일부러 돌아갔다. 성녕의 집이 큰길가에 있었기 때문이다. 곁에 선 이명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까이 지나시면 마음이 더 아프실 텐데요, 전하."

"안다. 그래도 못 보겠다."

상왕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갈라짐이 있었다. 그는 숭례문 쪽으로 돌아 서문을 통해 인덕궁에 들었고, 돌아오는 길도 같은 길을 택했다. 뒤에서 공사장 망치 소리가 둔하게 울려왔다. 나라는 새 궁궐을 짓고, 백성들은 가을 추수를 앞두고 허리를 폈다. 살아있는 것들은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 많은 것들을 죽였는가.*

형의 목을 쳤다. 동생의 목도 쳤다. 처남들을 도마 위에 올렸다. 반역을 꾀한 이무를 처단했고, 세자 양녕을 내쳤다.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해가 없었다. 그 모든 것이 조선을 세우고, 지키고, 완성하기 위해서였다고 믿었다.

지금 충녕이 그 조선을 받아 쥐고 있다.

이방원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눈부시게 맑은 가을 하늘이었다.

***

## 태종 18년 11월 갑인일, 경복궁 근정전.

아침 일찍부터 백관이 조복(朝服)을 갖추어 입고 뜰에 늘어섰다. 오늘은 세종이 상왕에게 존호(尊號)를 올리는 날이었다.

어린 임금이 옥책(玉冊)과 금보(金寶)를 두 손으로 받들어 들어왔다. 스물두 살 세종의 얼굴에는 긴장과 경건함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신 이도(李祹), 삼가 성덕과 신공이 하늘과 땅에 가득하신 상왕 전하께 옥책과 금보를 받들어 올리나이다."

책문(冊文)이 낭독되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공기를 울렸다.

*"聖德神功上王(성덕신공상왕)."*

성스러운 덕과 신묘한 공을 가진 상왕.

이방원은 높은 자리에 앉아 그것을 받았다. 무릎 꿇은 아들의 정수리를 바라보았다. 충녕이 — 아니, 세종이 — 이렇게 자랐다. 경서를 읽고 또 읽던 아이. 형들의 방종을 보며 홀로 단정하게 앉아 있던 아이. 아비가 내린 결정을 묵묵히 받아들이던 아이.

*이 아이라면 된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왕위를 물려준 이유가 오직 그것이었다.

신하들의 만세 소리가 하늘 높이 울렸다. 이방원의 눈가에 무언가가 스쳤다. 그것이 눈물인지 바람인지, 옆에 있는 사람도,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상왕의 생은 앞으로도 몇 해 더 남아 있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군사권을 손에서 놓지 않고, 외교 현안에도 개입하며 아들의 치세를 뒤에서 받쳐 주었다. 조선의 가장 강한 임금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모습을 바꿔 계속 서 있었다.

하지만 11월의 그 햇살 아래, 옥책을 받아 드는 순간만큼은 — 이방원은 이방원이었다. 왕도 상왕도 아닌, 자식이 잘 자란 것을 보고 안도하는 한 사람의 아비.

그것으로 충분한 날이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