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의 폭우가 사흘째 멎지 않는다.
새벽, 빗줄기가 창덕궁 처마를 두드리는 소리에 태종 이방원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천둥이 도성을 흔들고, 번개가 침전 휘장을 환히 비춘다. 임금은 자리를 박차고 마루에 선다.
"이 비가… 어디까지 갈 셈이냐."
날이 채 밝기도 전, 도승지 황희가 헐레벌떡 달려온다. 도포 자락이 비에 흠뻑 젖어 무겁게 늘어진다.
"전하! 도봉산이… 도봉산이 무너졌다 하옵니다."
"무어라?"
"양주, 포천, 풍양 일대 산이 무너진 곳이 이백칠십여 곳, 고령사 아래 한 집안 스물두 명이 한꺼번에 깔려 죽었다 하옵나이다. 죽은 백성이 쉰다섯, 소가 다섯, 말이 다섯…"
태종의 손이 부르르 떨린다. 그는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덮는다. 어깨가 들썩인다.
"스물두 명이… 한 집에서…"
황희가 차마 더 말을 잇지 못한다. 임금의 흐느낌이 새벽 빗소리에 섞여 든다.
이윽고 태종이 고개를 든다. 두 눈이 충혈되어 있다.
"옛적에 제왕 가운데 몸을 굽혀 수행한 자가 있다 들었다. 그 수행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냐. 무엇을 어찌하라는 것이냐."
황희가 무릎을 꿇는다.
"전하…"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이냐. 내가 어디서 하늘을 거슬렀길래 무고한 백성이 산에 깔려 죽는단 말이냐."
이날부터 태종은 식음을 끊는다. 종묘와 백악, 목멱에 기청제(祈晴祭)를 올리라 명하고, 친히 사문(四門)에 나가 비를 멎게 해달라 빈다. 그러나 임금이 진실로 두려워한 것은 비가 아니다. 백성의 원망, 그것이다.
***
며칠 뒤, 광화문 밖.
새벽안개 속에서 한 사내가 무릎을 꿇고 있다. 누더기 같은 베옷, 짚신은 너덜너덜하다. 사내의 손에는 북채가 쥐어져 있다.
신문고(申聞鼓).
태종이 즉위한 이래 궐문 앞에 세워둔 큰 북. 억울한 일이 있는 자는 누구든 이 북을 쳐서 임금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다. 양반이든 천민이든, 사내든 아낙이든 가리지 않는다.
사내의 이름은 이소을진(李所乙進). 본래 군졸이었으나 갑사로 발탁된 자다. 며칠 전 병조 좌랑 유장이 자신과 집터 다툼을 벌이다 그를 본조에 끌고 가 매질했다.
"신, 이소을진… 이소을진의 억울함을 아룁니다!"
쿵, 쿵, 쿵.
북소리가 새벽 도성을 깨운다. 수문장이 황급히 달려와 사내를 일으킨다.
"전하께 아뢰겠소. 잠시 기다리시오."
***
이날 편전.
"신문고가 또 울었다 하오?"
태종이 묻자 황희가 답한다.
"예. 갑사 이소을진이라는 자이옵니다. 병조 좌랑 유장이 사사로운 분으로 매질하였다 하오니…"
태종의 눈빛이 매서워진다.
"병조 좌랑이 부하 군졸을 사적으로 매질했다? 사간원과 헌부에 명하라. 유장은 수원으로 유배. 병조 참의 이발과 좌랑 유면은 파직하라."
대신들이 술렁인다. 한 갑사의 호소 한 마디에 좌랑이 유배라니. 그러나 임금의 어조는 단호하다.
"신문고는 짐의 귀다. 백성이 두드리는 북소리는 곧 하늘의 소리다. 이를 가벼이 여기는 자는 짐을 가벼이 여기는 자다."
신문고를 두고 태종이 마련한 법은 엄정하다. 사사로이 친 자는 벌하되, 진실로 억울한 자가 호소하면 반드시 직접 듣고 처결한다. 양반이 군졸을 매질해도, 권신이 백성의 밭을 빼앗아도, 이 북 한 번이면 임금의 어전에 닿는다.
***
여름이 가기 전, 또 하나의 북소리가 도성을 울린다.
승려 신성(信性)이 신문고를 두드린다.
전 흡곡 현령 김즙(金緝)이, 백성의 양식을 모금하던 승려 신혜를 사기꾼이라 단정해 빼앗고, 그 스승 해봉의 발을 불에 달군 쇠로 지졌다는 것이다. 권문세가의 청탁장까지 가져갔으나 김즙은 분을 못 이겨 인두를 뽑아 들었다.
태종은 보고를 받자 안색이 변한다.
"승려라 하여 백성이 아니더냐. 발을 인두로 지졌다… 김즙을 잡아들여라. 율(律)대로 처단하라."
며칠 후 김즙은 형을 받고 외방으로 쫓겨난다. 도성의 백성이 수군거린다.
"임금이 천한 중의 발 한쪽을 위해 사대부를 베셨다더라."
"그분께는 양반과 천민의 차가 없다더라."
***
가을이 깊어갈 무렵, 가주(嘉州)에서 한 통의 장계가 올라온다. 서북면 도순문사 이귀철이 보낸 글이다.
"도내 가주에 충개(虫介)라는 여자가 있사옵니다. 나이 열여섯에 어미가 악질에 걸렸을 때, 산 사람의 뼈가 약이 된다는 말을 듣고 스스로 오른손 무명지를 잘라 갈아 어미에게 먹이고, 그 뼈를 백회혈에 넣었더니 어미의 병이 곧 나았다 하옵니다. 지금 일곱 해가 지났사옵니다."
태종은 한참을 말이 없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연다.
"가주 충개라는 여인의 정문(旌門)을 세워 표하라. 미두 스무 섬을 내리라. 한낱 산골 처자의 일이라 하나, 이는 곧 우리 조선의 효(孝)요, 백성의 마음이다."
***
그러나 백성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짓누른 것은 따로 있다.
명나라 황엄(黃儼)이 처녀를 진헌하라며 또다시 도성에 이른다. 사신은 거만하게 교의에 걸터앉아 정승들을 세워두고 호통친다.
"경상 한 도가 나라의 절반인데, 어찌 미인이 없단 말이오! 그대들이 사사로이 추한 계집을 보낸 것 아니오?"
도성 곳곳에서 처녀를 둔 부모들의 비명이 들린다. 평성군 조견의 딸은 중풍 든 척 입을 비뚤리고, 이조 참의 김천석의 딸은 머리를 떨고, 전 군자감 이운로의 딸은 발을 전다.
전부 가짜다. 진헌을 면하기 위한 처절한 연기다.
황엄이 이를 알고 분노하자 헌사가 부모들을 잡아들이려 한다. 그러나 태종의 명은 다르다.
"백성이 자식을 지키려 한 것뿐이다. 어찌 그토록 죄가 되겠느냐. 다만 사신을 자극해 화를 부를까 두려우니, 정직하게 임하라 이르라."
또 명한다.
"처녀 채택으로 농민이 시달린다. 중등 이하는 모두 돌려보내라."
***
그해 겨울, 태종은 호조에 명을 내린다.
"공신전, 원종공신전, 회군공신전, 별사전, 사사전(寺社田)의 공수(公收)를 면하라."
세금을 거두지 말라는 뜻이다. 거듭된 흉년에 굶주리는 백성을 위한 조치다.
또 충청도와 풍해도에 경차관을 보내 진휼을 살피게 하고, 의약으로 백성을 살리는 활인(活人)의 법을 의정부에 명하여 정한다.
"한산한 의관들에게도 환자를 진찰케 하라. 신분을 가리지 말고 즉시 가서 구하라. 가장 많이 살린 자를 발탁하라."
***
밤이 깊다.
태종이 홀로 편전에 앉는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그날 신문고를 두드린 자들의 명단이다. 군졸의 억울함, 승려의 절규, 농부의 호소, 과부의 통곡. 한 장 한 장이 무겁다.
황희가 옆에 무릎 꿇어 있다. 임금이 조용히 묻는다.
"황 도승지. 짐이 형들을 베고, 처남들을 죽이고, 옛 동지들을 멀리 보냈다. 그러고도 짐이 임금이라 할 수 있겠는가."
"전하…"
"권력으로 왕좌에 올랐으니, 백성의 소리만이 짐을 떳떳하게 하리라. 신문고가 침묵하는 날, 그날이 바로 짐이 두려워해야 할 날이다."
창밖, 첫눈이 소리 없이 내린다.
먼 광화문 앞, 그 큰 북은 비어 있다. 그러나 새벽이 오면 또 누군가 그 북채를 들 것이다. 무고한 농부일 수도, 매 맞은 군졸일 수도, 발을 데인 승려일 수도 있다.
그 북소리 하나하나가 조선이라는 나라의 맥박이다. 태종은 그 맥박을 자기 가슴에 갖다 댄다.
피로 얻은 왕좌. 그러나 백성의 소리로 비로소 정당해지는 왕좌. 이방원은 알고 있다. 자신이 무엇으로 이 자리에 올랐든, 떠나는 날까지 저 북소리에 응답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곧 임금이라는 자리의 본분임을.
새벽이 다가온다. 멀리, 또 한 번, 신문고가 울린다.
'조선왕소설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태종 - 에피소드 7: 조선을 뿌리째 바꾸다 — 호패법과 행정개혁 (0) | 2026.04.30 |
|---|---|
| 태종 - 에피소드 6: 역신을 쳐라 — 이무의 반란과 피의 처단 (0) | 2026.04.29 |
| 태종 - 에피소드 4: 왕만이 다스린다 — 육조직계제와 강력한 왕권 (0) | 2026.04.27 |
| 태종 - 에피소드 3: 처남을 죽이다 — 민씨 형제의 숙청 (0) | 2026.04.24 |
| 태종 — 에피소드 2: 형의 칼끝 — 이방간의 도전과 패배 (1) | 2026.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