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기 1402년, 태종 2년. 가을 바람이 매섭다.
즉위한 지 해가 바뀌었다. 곤룡포는 이제 제법 익숙해졌지만, 이방원은 여전히 밤마다 잠을 설친다.
불안의 이름은 단 하나, **이방간(李芳幹)**.
제2차 왕자의 난에서 패한 형. 토산(兔山)으로 유배된 뒤 다시 순천(順天)으로 옮겨진 형. 살려둔 형. 그리고 — 살려두었기에 오늘까지도 태종의 목덜미를 서늘하게 만드는 형.
"아우의 칼은 무서웠으나, 형의 그림자는 더 질기구나."
태종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형제를 베어 왕이 된 사내가, 또 한 형제의 이름 앞에서 밤잠을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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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태상왕 이성계의 발길이 심상치 않았다.
"선왕의 능을 한 번도 참배하지 못하였다. 내가 이제 한가한 몸이 되었으니, 동북면으로 가서 조종의 산소를 뵙고자 한다."
태상왕은 흰 수염을 쓸며 말했다. 함흥에서 한 번 돌아와 놓고, 이번엔 또 동북면이라 했다. 도승지 박석명이 이 소식을 전했을 때, 태종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어디로 가시든, 그곳에는 반드시 일이 생긴다.*
태종은 안다. 태상왕이 머무는 땅은 늘 바람이 분다. 아버지의 그림자가 닿는 곳에는 옛 가신들이 모이고, 옛 추억이 들끓고, 옛 원한이 피어난다. 더구나 동북면은 이성계의 고향이자, 그를 왕으로 만든 무장(武裝)의 본거지였다.
그래도 태종은 말릴 수 없었다.
"태상왕의 뜻을 어찌 거스르겠는가."
내관 김완(金完)을 보내 문안을 올리게 했다. 태상왕은 웃으며 김완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내 이 걸음을 두고 미친 짓이라 할지 모르나, 저들에게도 부모가 있다면 내 마음을 알 것이다."
그 말이 환궁한 태종의 가슴을 오래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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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북면에서 바람은 이미 일고 있었다.
안변부사(安邊府使) **조사의(趙思義)**. 그는 고(故) 신덕왕후 강씨(康氏)의 친족이었다. 강씨. 태조의 계비이자, 이방원의 칼에 죽어간 이방석·이방번의 생모. 조사의에게 태종은 단순한 임금이 아니었다. 자신의 고모, 그리고 조카 둘을 죽인 원수였다.
그 원한이 동북면의 황량한 바람과 결합하자, 사태는 순식간에 들불이 된다.
조사의는 각 주군(州郡)에 사람을 보내 병력을 모은다. 명분은 단 하나.
"태상왕을 받들어, 왕실의 정통을 바로잡는다."
한양에서는 상상도 못한 반역이 동북면에서 태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반역의 배후에는 — 적어도 소문으로는 — 유배지에 있는 **회안대군(懷安大君) 이방간**의 이름이 떠돌았다. 조사의 무리는 방간의 아들 맹종(孟宗)을 염두에 두고, 혹은 방간 자신을 상징으로 내세우며, 이 왕조를 다시 뒤엎으려 했다.
형이, 다시 칼을 겨누고 있었다. 비록 그의 손에 칼은 없었으나, 그의 이름이 곧 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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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호군(大護軍) 안우세(安遇世)가 말을 달려 한양에 도착했을 때, 그의 안장에선 피와 먼지가 엉겨 있었다.
"전하, 동북면에서 조사의가 거병하였사옵니다\!"
태종은 옥좌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즉위 이래 가장 깊은 공포가 그의 얼굴을 스쳤다. 뒤에는 아버지가, 앞에는 형이, 옆에는 외척이, 아래에는 그가 벤 형제들의 피가 흐르는 땅이 있었다. 왕이 된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다.
"삼군을 소집하라."
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림이 없었다.
판승추부사 조영무(趙英茂), 좌정승 하륜(河崙), 이숙번(李叔蕃). 일찍이 왕자의 난에서 이방원의 칼을 함께 뽑았던 사내들이 다시 한 자리에 섰다. 두려움은 없다. 이미 한 번 해본 일이었다.
"동북면으로 출병한다. 태상왕을 무사히 환궁시키고, 역도를 일소하라."
태종은 덧붙였다.
"단, **태상왕의 몸에는 털끝 하나 다치게 하지 말라.**"
그것은 왕의 명령이자, 아들의 간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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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군이 동북면에 도착하기까지, 한양은 숨을 죽였다.
태종은 매일 편전에 나와 전황(戰況)을 물었다. 그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전쟁의 승패가 아니라, 아버지가 어느 편에 서는가였다. 이성계가 군복을 걸치고 말에 오른다면 — 태종은 싸울 수 없었다. 그가 벨 수 없는 단 하나의 사람이 아버지였다.
다행히 — 혹은 다행이라 해야 할지 — 태상왕은 끝내 말에 오르지 않았다.
노장(老將)의 눈에도 이 거사는 이미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조사의의 무리는 허술했고, 동원된 군사 중 적지 않은 이들이 태상왕의 진짜 뜻을 모른 채 끌려나온 이들이었다. 정부군이 몰려들자 반군은 속절없이 무너진다.
조사의는 사로잡혔다. 그의 아들도 함께였다.
반역자의 무리가 한양으로 압송되어 오던 날, 거리는 얼어붙은 듯 조용했다. 백성들은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이 피의 줄기가 어디서부터 흘러나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다시 돌아갈지를.
조사의와 그 주요 도당은 주살되었다. 수백의 무리가 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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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 평정되자, 대간(臺諫)이 상소를 올렸다.
"전하, 회안군 이방간 부자를 **제주(濟州)**로 옮기소서. 지난번 변고도 그의 이름을 빙자하여 일어났사옵니다. 바다 멀리 가두어야 종사(宗社)가 편안할 것이옵니다."
대신들은 이를 악물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신하들이 원하는 것은 하나였다. 이방간의 목.
태종은 오래 침묵했다. 편전의 등불이 바람에 흔들렸다.
*형을 죽이라 하는가.*
이미 한 번, 아니 두 번 — 이방석과 이방번을 베었다. 그것이 자신의 손을 더럽힌 것으로 충분했다. 또 한 명의 형제를 법의 이름으로 죽인다면, 그는 더 이상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원수일 뿐이었다.
"제주는 바닷길이 험하여 불가하다. 순천 성안에 그대로 두라."
신하들이 다시 청했다. 태종은 끝내 윤허하지 않았다.
단, 회안군 주변의 수행원을 줄이고, 출입을 엄금했다. 형은 살려두되, 그 손발은 완전히 묶어두는 방식. 그것이 태종이 선택한 답이었다.
형의 목숨값으로, 그는 또 한 번 밤잠을 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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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 태상왕이 평양에서 한양으로 돌아왔다.
"국왕이 내가 동북면에 있을 때 사람을 보내지 않았고, 맹주(孟州)에 있을 때도 보내지 않았으니, 섭섭함이 없지 않다."
태상왕은 나지막이 말했다.
시종이 황급히 변명했다.
"전하께서 전 정승 이서(李舒)와 대선사 익륜, 설오를 보내어 문안하였사오나, 길이 막혀 닿지 못하였사옵니다."
태상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그들은 내가 신임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보내신 것이겠지."
아버지와 아들은 그 해 겨울, 다시 마주 앉았다. 아무도 서로를 책망하지 않았다. 그러나 눈빛 아래에는 피와 바람과 눈물이 함께 흐르고 있었다.
태종은 그날 밤 일기를 쓰듯 속으로 되뇌었다.
*형의 칼끝은 꺾였다. 하지만 형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리고 살아 있는 한, 이 왕좌의 등 뒤에는 늘 서늘한 바람이 불 것이다.*
한 어머니의 다섯 아들 중, 둘은 그의 칼 아래 죽었고, 하나는 왕위를 물려주고 물러났으며, 하나는 유배지에서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남은 한 사람이, 지금 이 나라의 임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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