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소설록

태종 - 에피소드 3: 처남을 죽이다 — 민씨 형제의 숙청

정보알랴주미 2026. 4. 2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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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 에피소드 3: 처남을 죽이다 — 민씨 형제의 숙청


창덕궁의 밤은 유난히 무겁다.

태종 이방원은 편전에 혼자 앉아 있다. 촛불 하나가 용포 자락에 붉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는 손끝으로 술잔을 돌리며 네 개의 이름을 곱씹는다.

민무구(閔無咎). 민무질(閔無疾). 민무휼(閔無恤). 민무회(閔無悔).

그의 처남들이다. 왕비 원경왕후의 친동생들이다. 한때는 칼을 함께 뽑았고, 한때는 술잔을 함께 기울였던 사람들이다. 제1차 왕자의 난, 그 피바람 속에서 민씨 형제는 이방원의 오른팔이었다. 정도전의 목을 자르고, 형 이방과를 왕좌에 앉히고, 다시 그 왕좌를 이방원에게 넘기게 하는 그 모든 과정에 민씨 형제의 칼과 입이 있었다.

"내가 그들의 힘으로 왕이 되었지."

혼잣말이 어둠 속으로 흩어진다. 그런데 이제, 그 칼과 입이 무섭다. 태종은 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내 비밀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

며칠 전, 세자 양녕이 궁을 나섰다. 외가, 즉 민씨 집안을 방문한 것이다. 태종이 몸져누웠다는 소식이 퍼진 직후였다.

"세자 저하, 오셨습니까."

민무구가 양녕의 손을 잡는다. 양녕은 열여섯, 아직 어리지만 눈빛은 이미 왕자의 것이다.

"외숙부, 아바마마께서 위중하시다 들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저희 형제가 있습니다. 세자 저하만 계시면 조정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한마디가, 그 한마디가 태종의 귀에 들어간 것이다. 밀정은 궁궐 곳곳에 있다. 처남의 집안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처남의 집안이기에 더 촘촘히.

"저희 형제가 있습니다."

태종은 그 말을 곱씹으며 술잔을 내려놓는다. 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내가 죽으면 너희가 세자를 끼고 조정을 주무르겠다는 뜻이냐.'

***

사실 태종은 병이 낫자마자 시험을 했다. 일부러 몸이 좋지 않다고 알리고, 세자에게 왕위를 넘길 뜻이 있다는 말을 흘렸다. 그리고 지켜보았다. 누가 눈물을 흘리는지, 누가 미소를 감추는지.

신하들 대부분은 진심으로 반대했다. 폐하, 부디 옥체를 보중하소서. 세자는 아직 어리옵니다.

그런데 민씨 형제는 달랐다. 그들의 눈빛에는 기대가 있었다. 감추려 했으나 감출 수 없는 기대. 어린 세자를 끼고 외척으로서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그 기대.

태종은 보았다. 보고야 말았다.

"처남들아."

어린 날의 호칭이 입에서 나온다. 그 호칭에는 이제 정이 없다. 차가운 결심만이 남는다.

"내가 너희를 키운 건, 내 등 뒤에 서라고 한 것이지, 내 아들 앞에 서라고 한 게 아니다. 너희는 내 칼이었지, 내 아들의 방패가 아니다."

***

이듬해 봄, 영의정 이화가 상소를 올린다. 이화는 태종의 숙부뻘 종친. 그가 움직였다는 것은 왕의 뜻이 움직였다는 뜻이다.

"민무구 형제가 세자를 끼고 조정을 어지럽히려 했사옵니다. 협유집권(挾幼執權), 어린 세자를 끼고 권력을 잡겠다는 흉계이옵니다. 부디 엄히 다스리소서."

편전에 엎드린 대신들의 목이 낮다. 태종은 용상에서 눈을 감는다.

민제. 장인이다.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살아 있었다면 이 자리에서 사위를 향해 무엇을 말했을까. 당신의 아들들이 내 등에 칼을 겨누었다고, 사위가 말해야 하는가. 혹은 용서해 달라 빌어야 하는가.

그러나 태종은 안다. 권력의 세계에서 정은 가장 먼저 베어내야 할 살이다. 살이 두터울수록, 더 깊이 베어야 한다.

"민무구, 민무질을 제주에 유배하라. 공신의 녹권을 거두고, 작위를 삭탈하라."

목소리가 낮다. 낮지만, 칼이다. 대신들은 숨죽여 엎드린다. 바람 하나도 감히 움직이지 못한다.

***

제주의 파도 소리가 민무구의 귓가에서 울린다. 유배지의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형님. 어찌 이리 되었소."

민무질이 형의 어깨를 잡는다. 민무구는 허탈하게 웃는다. 그 웃음이 슬프게 낡아 있다.

"내가 한마디를 잘못했다. 아니, 한마디가 아니지. 내가 세자의 외숙부로 살려 한 그 마음이 죄였다. 매형을 너무 몰랐다. 아니, 너무 잘 안다고 착각했다."

"매형은 우리를 잊으실 겁니다. 왕비마마께서 계시지 않습니까."

민무구는 고개를 젓는다. 바다 냄새가 방 안까지 밀려든다.

"아우야. 누이가 우리를 살리려 울면 울수록, 매형은 우리를 더 죽이려 할 것이다. 왕은 아내의 눈물에 약해지는 자기 자신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래서 더 독해진다. 매형은 그걸 이미 알고 있어. 왕자의 난에서 형제의 목을 벤 사람이다. 처남의 목쯤이야, 새털처럼 가볍지."

파도가 운다. 형제도 운다. 소리 없이.

***

한양 궁궐, 원경왕후의 처소.

왕비는 무릎을 꿇고 있다. 왕의 아내로서가 아니라, 민씨 집안의 딸로서. 머리카락이 풀어져 어깨에 흘러내린다. 한때 함께 난을 준비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던 그 부부가, 이제 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적처럼 마주한다.

"전하, 제 동생들입니다. 전하께서 함께 피를 나눈 사람들입니다. 어찌 이리 모질게 하십니까."

태종은 돌아보지 않는다. 창밖을 본다. 봄꽃이 흩날린다.

"중전. 나는 더 이상 그대의 남편이 아니오. 조선의 왕이오."

"전하—"

"민씨 형제는 내 처남이 아니라 조선의 역신(逆臣)이오. 사사(賜死)를 명할 것이오."

왕비의 얼굴이 무너진다. 그녀는 바닥에 이마를 찧는다. 피가 흐른다.

"차라리 저를 죽이십시오\! 저 하나면, 저 하나만 죽이면 되지 않습니까\!"

태종의 어깨가 흠칫 떨린다. 그러나 그는 끝내 돌아보지 않는다. 돌아보면, 베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안다. 그리고 돌아보고 싶은 자신이 가장 두렵다.

***

그해 가을, 민무구와 민무질에게 사약이 내려진다.

제주의 바닷가, 형제는 마주 앉는다. 사약이 담긴 사기그릇이 두 개. 푸른 파도가 멀리서 우는 소리. 금부도사의 갓 위로 서늘한 바람이 스친다.

"형님, 먼저 드시오."

"아니다. 우리는 함께 태어났으니 함께 가자."

두 형제가 동시에 잔을 들이킨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차가운 독. 민무구는 마지막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제주의 하늘은 잔인하리만큼 푸르다.

"매형…… 당신은 조선을 지키려 우리를 죽였지. 하지만 기억하시오. 언젠가 당신도, 당신의 아들을 이 자리에 앉힐 날이 오리라는 것을. 그때 당신은 알게 될 것이오. 왕이 된 아비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예언이었을까, 저주였을까. 그의 말은 훗날 세자 양녕의 폐위에서 기묘하게 되살아난다.

두 형제가 쓰러진다. 파도가 그들의 옷자락을 어루만진다.

***

몇 해 뒤, 남은 두 동생 민무휼과 민무회마저 같은 길을 걷는다. 역시 사약. 역시 유배지. 민씨 네 형제는 모두 사라졌다. 조선에서 가장 화려했던 외척 가문 하나가 그렇게 지워졌다.

태종은 편전에서 그 소식을 듣는다. 그는 붓을 놓고, 한참을 말이 없다가 한마디를 던진다.

"이로써 조선에 외척은 없다."

목소리는 담담하다. 그러나 붓끝이 살짝 떨린다. 옆에 있던 도승지는 고개를 숙이고 그 떨림을 보지 못한 척한다. 왕의 눈물은, 왕 자신도 모르는 척해야 하는 것이다.

***

왕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함께 칼을 뽑은 자들을 베어야 하는 것. 아내의 가족을 잘라내야 하는 것. 사랑했던 얼굴들을 역신의 이름으로 기록해야 하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혼자, 혼자서만 견뎌야 하는 것.

태종은 그날 밤도 편전에 홀로 앉아 있다. 촛불이 흔들린다. 그림자가 용포 위에 올라탄다. 그는 빈 잔을 들어 허공에 건배한다.

"처남들아. 좋은 곳에 가거라. 내가 만든 조선에는, 너희가 살 자리가 없었다."

촛불이 꺼진다. 창덕궁의 밤은, 오늘도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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