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소설록

태종 - 에피소드 6: 역신을 쳐라 — 이무의 반란과 피의 처단

정보알랴주미 2026. 4. 2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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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 에피소드 6: 역신을 쳐라 — 이무의 반란과 피의 처단



태종 9년 시월. 진선문(進善門) 밖.

이무(李茂)가 형틀에 묶여 있다.

그의 흰 도포는 흙으로 더럽혀졌고, 백발이 바람에 흩날린다. 한때 정승의 자리에 올라 만민을 호령하던 사내, 1차 왕자의 난에서 이방원과 함께 칼을 들었던 동지. 그러나 지금 그는 한낱 죄인이다.

태종은 정전(正殿)에 좌정해 있다. 그 앞에 의정부 대신과 삼공신(三功臣)이 무릎을 꿇고 있다. 임금의 음성이 낮게 깔린다.

"경들은 이무의 죄를 다 알지 못할 것이다. 짐이 그날의 일을 말해주겠다."

대신들이 숨을 죽인다.

"무인년 그날, 부왕께서 위독하시어 짐과 형제들이 경복궁에서 시병(侍病)하던 때였다. 짐은 이무라는 자를 이름만 들었지 친히 알지 못했다. 그런데 무가 무질을 통해 짐과 가까이하더니 이렇게 일러주었다."

태종의 목소리가 거칠어진다.

"‘남은과 정도전이 부왕의 병이 위독한 틈을 타 적자(嫡子)들을 해칠 모의를 하고 있으니, 공이 미리 도모하소서.’ 닷새 뒤 그가 또 와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저녁 도전 무리가 거사하려 합니다. 때를 놓치지 마소서.’"

대신들의 얼굴이 굳는다.

"짐이 군사를 일으켜 도전의 회처(會處)로 달려갈 때, 길에서 무리 십여 명을 만나 활을 쏘았다. 그런데 막상 도전의 집에 이르니 그놈들은 이미 달아나 있었다. 어찌 된 일인가."

***

이무의 진짜 모습이 그날 밤 드러났다.

태종은 회상한다. 혜비(惠妃) 댁 문 앞에서 만난 이무는 화살을 맞은 척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공이 왜 약속을 어기시오? 내가 화살을 맞았소이다."

"군중에 이무·박포의 이름은 쏘지 말라 일렀소. 그대는 어찌 ‘나는 이무다’ 외치지 않았소?"

기이한 일이었다. 그러나 더 기이한 것은 그 다음이다. 태종이 군세를 모아 운종가(雲從街)에 합좌했을 때, 이무는 말 위에서 흐느적거리며 거짓 혼절했다.

"정신이 황홀하니 군께서 나를 살려주소서…"

태종이 사람을 시켜 그를 부축해 내려놓는다. 그런데 잠시 뒤, 조온과 이지란이 합세하여 형세가 강해지자 이무는 멀쩡한 얼굴로 돌아온다.

"장수(漿水) 한 모금 마시니 곧 나았소이다."

태종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놈은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구나. 정도전이 이기면 정도전 편에 붙고, 이방원이 이기면 이방원 편에 붙으려 했던 것이다.

"중립이라는 미명 아래, 두 마음을 품은 자였다."

태종의 눈에 분노가 일렁인다. 대신들이 등에 식은땀을 흘린다.

***

그러나 태종은 이무를 살려두었다. 정사공신(定社功臣)에 올렸고, 정승까지 시켜주었다. 그가 말한다.

"임오년 짐이 큰 종기로 사경을 헤맬 때, 민무구·민무질 형제와 신극례가 짐의 어린 아들을 세우자 모의하였다. 그 모의의 머리가 누구였겠는가."

대신들이 일제히 고개를 든다.

"이무였다."

이무의 어깨가 떨린다. 그는 더는 변명할 말이 없다.

"세자가 명나라에 입조할 때, 짐은 그를 보행(輔行)으로 삼았다. 끝까지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무엇을 했는가."

침묵.

"역모의 씨앗을 뿌렸다. 윤목·이빈·유기·조희민·강사덕… 그들과 짠짝이 무엇을 도모했는지, 짐이 모를 것 같으냐."

태종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무를 사형(死刑)에 처하라."

***

이무가 죽었다. 시체는 저자에 효시(梟示)되었다. 함께 모의한 자들도 차례로 처형되었다. 윤목, 이빈, 유기, 조희민, 강사덕…

그리고 이무의 아들 이간(李衎)에게도 형이 내려진다.

해가 바뀌어 태종 10년 정월. 사간원이 또 상소를 올린다.

"난적을 베고 그 일당을 다스리는 것은 《춘추》의 법이옵니다. 윤목 등 일당이 아직 천명(性命)을 보전하고 있는 것은 《춘추》 토난(討亂)의 의(義)가 아니옵니다. 모두 명정전형(明正典刑)하소서."

상소는 매일같이 올라온다. 사헌부·사간원이 번갈아 궐문 앞에 엎드린다. 태종이 미간을 찌푸린다.

"또 그 일이냐. 이무는 이미 죽었고, 그 일당도 죽었다. 어디까지 가야 만족하겠느냐."

대간(臺諫)은 물러서지 않는다.

"전하, 무구·무질을 사면하지 마소서! 이무의 일당이옵니다!"

태종의 처남들이다. 원경왕후의 친동생들. 사년 전부터 제주에 안치되어 있는 그들이다.

***

봄 삼월. 사헌부 상소가 또 올라온다.

"무구·무질은 그 죄가 사흉(四凶)과 같고 관·채(管蔡)와 같사옵니다. 천토(天討)를 베푸시지 않으니 일국의 사람들이 이를 갈고 있나이다. 그놈들이 제주의 험지에 의지하여 당여를 결성하고 변고를 일으킨다면 어찌하시려 합니까!"

태종의 손이 어보(御寶) 위에서 떨린다. 처남들. 한때 한 상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사람들. 원경왕후의 동생들. 그러나 지금은 죽이라 청해지는 자들.

지신사 안등이 조심스레 입을 연다.

"전하…"

"안 들린다. 짐은 듣지 않은 것으로 한다."

***

여름. 한 사내가 잡혀 들어온다. 이름은 정인수(鄭仁壽). 평범한 백성이다.

그가 무엇을 했길래?

"꿈을 꾸었습니다. 이무가 왕이 되어 의장(儀仗)을 갖추고 시조(市朝)를 지나가는 꿈을…"

그는 이웃 한룡(韓龍)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한룡이 대답했다. "체위(遞位)할 길몽이외다." 그뿐이다.

뒷날 두 사람이 다투다가 한룡이 이 일을 고변(告變)한다. 정인수가 잡혀 와 형신을 받는다.

태종이 듣고 한숨을 쉰다.

"꿈이란 천공을 날기도 하고 하늘에 오르기도 한다. 허망한 것이다. 어찌 꿈으로 사람을 죽이겠느냐. 곤장을 치고 풀어주라."

그러나 의정부가 들고 일어난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낮에 행한 것이 밤에 꿈이 된다’고 하였사옵니다. 평소에 그런 마음이 없었다면 어찌 그런 꿈을 꾸겠나이까. 이무가 전성기일 때 다른 사람에게 그 꿈을 발설한 것은 ‘대언어(大言語)’ 율(律)을 적용함이 마땅합니다."

태종은 한참을 침묵한다. 그리고 결국 명을 내린다.

"정인수와 한룡을 베어라."

꿈 한 자락. 그 꿈 때문에 두 사람이 죽는다. 이무라는 이름은 이제 입에 올리는 것조차 죄가 된 것이다.

***

밤이 깊다. 태종은 홀로 편전에 앉는다.

서안(書案) 위에 펼쳐진 것은 그동안 처형된 자들의 명단이다. 이무, 윤목, 이빈, 유기, 조희민, 강사덕, 이간, 정인수, 한룡… 종이 한 장이 사람의 목숨 하나다.

황희가 옆에 무릎 꿇어 있다. 임금이 가만히 묻는다.

"황 도승지. 짐이 이무를 살리고 싶었던 적이 있느냐."

"전하…"

"있었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었다. 정사 때 함께 칼을 들었던 자다. 정승까지 시켜주었던 자다. 그러나 그자는 끝내 두 마음을 품었다. 짐이 어린 자식을 잃을 뻔했고, 종사가 무너질 뻔했다."

태종의 눈에 핏발이 선다.

"황희야. 한 사람의 두 마음이 만 사람의 목숨을 위협한다는 것을, 짐은 무인년 그날 새벽에 깨달았다. 자비란, 때로는 더 큰 잔인함이다."

밖에서 까마귀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그러나 짐이 죽인 자가 너무 많구나."

황희가 고개를 든다. 임금의 눈가에 무언가 번득인다. 그것이 분노인지, 회한인지, 황희는 분간하지 못한다.

먼 새벽, 또 한 통의 상소가 올라올 것이다. 무구·무질을 베라는 상소가. 그 상소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태종이 그들을 살려두는 한.

이방원은 안다. 자신이 한 번 칼을 뽑은 이상, 그 칼은 결코 다시 칼집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권력으로 얻은 왕좌는, 권력이 무너질 때까지 칼끝 위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을.

진선문 밖에서 까마귀가 또 운다. 이무가 효시되었던 그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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