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0년, 가을의 끝자락.
개경의 공기는 차고 무거웠다. 나뭇잎은 일찌감치 물들었고, 사람들의 말수는 줄었다. 한 해 내내 이어진 흉흉한 징조들—여름의 가뭄, 가을의 우박, 한밤중 궁궐 북쪽에서 들려오는 여우 울음소리—이 이제는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정종(定宗)은 경연을 마치고 침소로 돌아가는 길에, 복도에서 문득 걸음을 멈췄다.
현기증이 가볍게 스쳐 지나갔다. 풍질(風疾). 오래전부터 그를 괴롭혀온 병이었다. 근래에는 바람이 부는 날이면 머리가 흐려지고, 정무를 보는 중에도 문서의 글자가 흐릿하게 번지곤 했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내관이 조심스레 여쭈었다.
정종은 손을 들어 괜찮다는 시늉을 하고는,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는 알고 있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난 3년 동안, 그는 열심히 왕노릇을 해왔다. 경연을 열고, 신하들의 말을 경청하고, 백성을 아끼려 애썼다. 그러나 하늘은 그에게 등을 돌린 듯했다. 재변(災變)이 그치지 않았다.
'내가 부덕한 탓이다.'
그렇게 생각할수록, 마음 한구석은 오히려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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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덕수궁의 태상왕 이성계는 종잡을 수 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었다.
한 번은 정릉(貞陵)에서 정근법석(精勤法席)을 열었다. 죽은 왕후 신덕왕후와 어린 아들 방석·방번을 위한 불사(佛事)였다. 태상왕은 자신의 옷을 벗어 부처에게 보시했고, 그대로 오대산(臺山) 낙산(洛山)으로 떠나겠다고 했다.
어느 새벽, 태상왕은 사람들이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궁문을 나섰다. 말 130필을 역에서 강제로 징발하니 역리(驛吏)들이 도망쳐 숨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세자 이방원은 급히 벽제역(碧蹄驛)까지 아버지를 뒤쫓았다.
"아버님, 부디 돌아가시옵소서."
태상왕은 아들을 한번 쳐다보고, 다시 산쪽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분노도, 애정도 없었다. 오직 피로만이 있었다.
대장군 박순(朴淳)이 곁에서 아뢰었다.
"태상왕께서 저하의 수행을 원치 않으신다 하여 여기서 돌아가시면, 반드시 후회가 남으실 것입니다."
세자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나 끝내 아버지의 등을 배웅하고 궁으로 돌아섰다.
아버지는 다시 한 번 궁을 떠났다. 이번에도 조선의 왕자들은, 아버지의 등만 바라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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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로 접어들면서, 궁 안의 공기가 조용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종은 침전에서 세자를 불렀다.
"방원아."
형은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미소 지었다. 그 웃음은 쓸쓸하면서도 편안해 보였다.
"과인이 뜻을 정했다."
이방원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형님, 그것이 무엇입니까?"
"왕위를 너에게 물려주려 한다."
짧은 침묵이 침전을 덮었다. 창문 너머로 바람이 지나가며 낙엽이 돌계단 위를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형님…"
"듣거라."
정종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단호했다.
"과인이 어려서부터 말 타고 활 잡기만 좋아했지, 학문은 깊이 하지 못하였다. 왕위에 오른 지 3년이 흘렀으나, 하늘의 뜻은 허락하지 않았고, 민심은 모이지 않았다. 재변(災變)은 끊이지 않고, 풍질은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나는 이 무거운 짐을 더는 질 수 없다."
"형님께 무슨 허물이…"
"방원아."
형이 고개를 저었다.
"이 자리는 처음부터 네 것이었다. 너도 알고, 나도 안다. 신하들도 다 안다. 다만 내가 맏이라 하여 잠시 맡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이제 물러나 조용히 지내고 싶구나."
이방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형 앞에 엎드렸다.
"신은 받을 수 없습니다. 부디 거두어 주소서."
"너는 받아야 한다."
정종은 동생의 등을 천천히 쓸었다.
"개국의 공이 네게 가장 컸다. 왕자의 난을 정리하고 종사(宗社)를 안정시킨 것도 너다. 사병 혁파를 이룬 것도 네 뜻이었다. 이 나라를 누가 맡아야 하는지, 하늘이 이미 정해 놓았다."
이방원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는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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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신미일(辛未).
판삼군부사 이무(李茂)가 교서(敎書)를 받들고, 도승지 박석명(朴錫命)이 국보(國寶)를 받들어 인수부(仁壽府)로 나아갔다.
세자 이방원은 뜰에서 무릎을 꿇었다. 국보 상자가 그의 앞에 놓였다. 황금빛 인장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권근(權近)이 교서를 낭독했다.
"…왕세자는 굳세고 밝은 덕을 품었으며, 용맹하고 지혜로운 자질을 지녔다. 인의(仁義)는 타고난 것이며, 효제(孝悌)는 지성에서 나왔다. 일찍이 세상을 건지고 백성을 편안케 할 도량으로, 난을 평정하고 바름을 돌이키는 공을 이루었다… 오직 어질고 덕 있는 자에게 대통을 잇게 하노라. 이에 세자에게 명하여 왕위를 전하노라…"
세자 이방원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신은… 감당할 수 없나이다."
그러나 정종의 뜻은 이미 확고했다. 신하들이 거듭 청한 끝에, 세자는 마침내 옥새를 받들어 들었다.
그 소식이 태상왕에게 전해졌다. 좌승지 이원(李原)이 선위(禪位)의 뜻을 아뢰자, 태상왕은 잠시 먼 곳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말리자 해도 말릴 수 없고, 하지 말라 해도 하지 말라 할 수 없구나. 이미 전위했으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는 낡은 목소리로 짧게 웃었다. 그 웃음은 체념 같기도, 안도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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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 계유일(癸酉).
수창궁(壽昌宮)의 뜰에 문무백관이 도열했다.
세자 이방원이 조복(朝服) 차림으로 연(輦)에 올라 수창궁에 이르렀다. 그는 한 발 한 발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그 모든 발걸음을 지켜보며, 많은 신하들의 뺨에 눈물이 흘렀다.
1398년 8월, 제1차 왕자의 난. 그는 동생들을 베었다.
1400년 1월, 제2차 왕자의 난. 그는 형을 꺾었다.
사병을 혁파했고, 국정을 개편했고, 공신들의 불안을 달랬다.
그 모든 피와 땀과 계산 끝에, 마침내 이 자리였다.
이방원, 서른넷.
그가 왕좌에 앉았다.
"조선국 왕(朝鮮國王) 이방원, 즉위하셨나이다\!"
백관이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산호(山呼) 소리가 궁궐을 흔들었다.
"천세(千歲)\! 천세\! 천천세(千千歲)\!"
새 왕은 곧바로 즉위 교서를 내렸다.
"건문(建文) 2년 11월 13일 새벽 이전의 모든 죄는, 사면하라. 다만 이 은혜를 핑계로 남을 모함하는 자는, 그 죄로 다스릴 것이다."
백관이 다시 한 번 머리를 숙였다. 새 시대가 왔다. 태종(太宗)의 시대였다.
그날 밤, 태종은 추동(楸洞)의 본궁으로 돌아갔다. 개경의 하늘에는 맑은 달이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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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신묘일.
태종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상왕전(上王殿)으로 나아갔다. 형 정종에게 존호(尊號)를 올리는 자리였다.
"인문공예상왕(仁文恭睿上王)."
이어 태종은 직접 술잔을 들어 형의 장수를 축원했다. 정종의 왕비 덕비(德妃)에게는 "순덕왕태비(順德王太妃)"의 존호를 올렸다.
축하연이 벌어졌다. 공신들과 재상들이 차례로 일어나 춤을 추었다. 이거이도, 하륜도, 조영무도, 어제까지의 긴장과 대립이 하룻저녁 잔치 속에 녹아 내렸다. 군신이 함께 일어나 춤추니, 마침내 웃음소리가 궁을 채웠다.
상좌에 앉은 정종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는 왕위에서 물러난 뒤 비로소 편안해 보였다. 무거운 옥좌를 내려놓은 어깨가 한결 가벼워 보였다. 격구도, 사냥도, 시도, 술도—이제 그는 마음 놓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 옆에서 새 왕 태종이 형의 잔에 술을 따랐다.
형과 아우, 상왕과 왕.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며 가만히 웃었다. 말은 없었으나, 모든 것이 그 짧은 웃음 속에 들어 있었다.
바깥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1400년의 겨울, 조선의 세 번째 왕이 드디어 옥좌에 앉았다. 그리고 그 옥좌 뒤에는, 자신의 것이었던 자리를 기꺼이 내어준 한 형이 있었다.
정종의 시대는 조용히 저물었고, 태종의 시대는 소리 없이 밝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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