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소설록

정종 - 에피소드 4: 세자의 시대 — 이방원, 권력을 굳히다

정보알랴주미 2026. 4. 2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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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 - 에피소드 4: 세자의 시대 — 이방원, 권력을 굳히다



1400년, 봄.

개경의 하늘은 맑았다. 하지만 궁궐 안의 공기는 무거웠다.

세자 이방원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뜰에서 갑사들이 무기와 군기(軍旗)를 상자에 담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조용하고 질서 있는 풍경이었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누구도 가볍게 볼 수 없었다.

사병(私兵) 혁파. 오늘로써 조선의 군사력은 오직 삼군부(三軍府)로만 집결된다.

"세자 저하."

도승지 정구(鄭矩)가 낮은 목소리로 아뢰었다.

"이거이 대감과 이저 공이 출행을 준비하고 있다 합니다. 외임지로 나가시기 전에 하직 인사를 올리고 싶다 하시는데요."

이방원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들여보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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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이(李居易)는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이방원의 처가 쪽 어른이기도 했고, 제1차 왕자의 난을 함께 헤쳐온 공신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의 눈에는 분노도 원망도 아닌 쓸쓸함이 담겨 있었다.

"저하."

이거이가 허리를 굽혔다.

"신이 이제 계림으로 떠납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이방원은 그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왕자의 난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피를 함께 흘린 동지.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대감, 오해하지 마시오."

이방원의 목소리는 낮되 단호했다.

"이것은 대감을 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오. 나라에 사병이 남아 있는 한, 언제든 또 다른 '왕자의 난'이 일어날 수 있소. 그 화의 불길이 대감 자신을 태울 수도 있다는 것을, 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오."

이거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다시 한 번 절을 올리고 물러났다.

그의 아들 이저(李佇)는 눈물을 글썽이며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이방원은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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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개혁은 봄바람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는 의정부(議政府)로 이름을 바꾸었다. 중추원(中樞院)은 삼군부(三軍府)가 되었다. 군권과 정권이 명확히 분리되고, 의정부와 삼군부는 서로를 견제하게 되었다.

신하들은 속으로 알았다. 이 모든 것은 이방원이 설계한 것이라고.

정종은 매일 경연(經筵)에 나섰다. 신하들과 《논어》를 읽고, 역사를 토론했다. 때로는 격구(擊毬)를 치고, 때로는 신하들과 밤늦도록 시(詩)를 짓고 흥겹게 술자리를 벌였다.

왕은 착했다. 진심으로 착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실권은 이방원에게 있었다. 신하들도 그것을 알고, 이방원도 알고, 정종 자신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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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덕수궁(德壽宮)에서는 태상왕 이성계가 조용히 불씨를 키우고 있었다.

태상왕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제1차 왕자의 난 때 자신의 곁을 떠난 자들, 이방원의 편에서 싸운 자들. 조온(趙溫), 이무(李茂), 조영무(趙英茂).

"저 자들이 내 아들을 죽였다."

이성계는 세자 이방원을 불러 말했다.

"조온은 내 갑사를 끌고 네 편에 섰다. 이무는 중간에서 눈치를 보다 네가 이기자 달라붙었다. 조영무도 마찬가지다. 이 자들이 내 신하였는데, 나를 배신했다. 네가 내 아들이라 여긴다면, 저것들을 벌하여라."

세자 이방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명이다. 하지만 저들은 자신의 공신이다. 저들을 벌하면 공신들 사이에 공포가 퍼진다. 자신을 따르는 자들이 흔들린다.

이방원은 아버지의 명을 차마 거역할 수 없었다. 결국 조온은 완산으로, 이무와 조영무는 각각 강릉과 곡산으로 유배되었다.

대신들이 들고일어났다. 성석린, 하륜을 비롯한 문무백관이 줄줄이 상소를 올렸다.

"이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정사(定社)의 공신들을 이렇게 내친다면 누가 세자 저하를 믿고 따르겠습니까?"

결국 이방원은 두 발이 묶인 상태에서 조용히 협상을 벌였다. 태상왕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공신들의 불안을 달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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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개경에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조용히 퍼졌다.

길재(吉再).

고려의 선비였다. 이방원이 직접 부른 학자. 세자 시절 함께 글을 읽던 벗이었다.

길재가 개경에 나타났다. 세자는 기쁜 마음으로 그에게 봉상박사(奉常博士) 벼슬을 내렸다.

그러나 길재는 궁에 들어가 사은(謝恩) 인사조차 드리지 않고, 왕에게 글을 올렸다.

"신은 고려 신씨 조정에서 벼슬을 받았습니다. 여자는 두 지아비를 섬길 수 없고, 신하는 두 임금을 섬길 수 없습니다. 신을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조정이 술렁였다.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니, 이것은 조선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이 아닌가.

이방원은 권근에게 물었다.

"길재를 어찌해야 하겠소?"

권근이 대답했다.

"그런 사람은 억지로 벼슬 자리에 묶어두어서는 안 됩니다. 자연스럽게 떠나게 하면 후세에 절의를 지킨 선비로 칭송받을 것이요, 그 칭송은 도리어 저하의 관대함을 빛낼 것입니다."

이방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길재를 고향으로 돌려보내며 복호(復戶)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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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 어느 날, 정종은 후원의 서늘한 정자에서 세자와 나란히 앉았다.

"방원아."

정종이 처음으로 이름을 불렀다. 세자가 아니라, 동생의 이름으로.

"과인이 왕노릇을 잘 하고 있는 것이냐?"

이방원은 잠시 말이 없었다.

"형님께서는 훌륭한 왕이십니다. 신하들의 말을 경청하시고, 백성을 아끼시고, 어떤 폭군도 하지 못한 사병 혁파를 이루셨습니다."

"그래도."

정종은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 자리가 내 것이 아님을 나는 알고 있다. 처음부터 그랬지. 난이 끝나고 형들이 모두 사라진 후, 갑자기 나를 왕으로 세웠을 때부터."

달빛이 뜰에 쏟아졌다.

정종이 조용히 덧붙였다.

"네가 왕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일이다."

이방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형의 말 앞에 깊이 머리를 숙였다.

그 고요한 밤, 두 형제는 한동안 말없이 달을 바라보았다.

이방원의 시대가 눈앞에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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