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9년 8월 초, 개경 수창궁(壽昌宮).
한여름의 밤은 끈적하고 더웠다. 궁궐 지붕 위로 가득 찬 달이 떠 있었다. 내관들이 마당에 물을 뿌려도 열기는 쉬이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어둠 속 어딘가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부엉—
올빼미 울음이었다. 궁성 안에서.
내관 하나가 황급히 달려와 승지에게 아뢰었다.
"올빼미가 궁성 담장 위에 앉아 울고 있습니다. 서운관(書雲觀)에서는 이것이 매우 불길한 징조라 하옵니다."
서운관은 하늘의 변화를 읽고 재이(災異)를 해석하는 관청이었다. 그곳의 말이라면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이미 몇 달 전부터 하늘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금성(太白)이 한낮에 하늘을 가로질렀고, 방성(房星)이 금성을 범하는가 하면, 별들이 제자리를 벗어나 서로를 침범했다.
왕 이방과(李芳果)는 편전에 홀로 앉아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올빼미 소리가 잦아든 뒤에도, 그는 한동안 자리를 뜨지 않았다. 불길하다. 허나 무엇이 불길한 것인지, 이미 궁궐 안에는 불안한 기운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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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이 새해 첫날 올린 교서는 '붕당(朋黨)을 금한다'는 내용이었다.
*"종실과 공후, 대신과 공신에서 백관에 이르기까지, 각자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고 사사롭게 방문하는 일을 삼가라."*
교서를 작성하면서 정종은 씁쓸함을 숨길 수 없었다. 공후들이 저마다 사병을 이끌고 궁궐을 드나들며 서로를 헐뜯고 짓밟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신하들끼리 뒤에서 소곤거리고, 서로의 다리를 잡아당겼다. 전조(前朝) 고려의 망국적 풍습이 그대로 이 새 왕조에도 피어났다.
그리고 그 모든 붕당의 중심에는, 보이지 않는 두 힘이 충돌하고 있었다.
정안공(靖安公) 이방원.
회안공(懷安公) 이방간.
같은 어머니 한씨(韓氏)의 피를 나눈 형제였지만,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공기는 언제나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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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로 접어들자 사태는 더욱 심상치 않아졌다.
"전하! 진동(震動)이 있었사옵니다!"
새벽 무렵, 궁궐 전체가 한 차례 크게 흔들렸다. 잠자리에서 깬 정종이 황급히 일어났을 때, 내관들이 허둥대며 달려오고 있었다. 지진이었다. 개경 어딘가에서 기왓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 며칠 뒤의 야심한 시각, 다시 기묘한 보고가 들어왔다.
"수창궁 성 안에서 여우가 울었습니다."
여우가 왕의 궁궐 안에서.
내관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서운관의 관원들이 이마를 맞대고 오래된 문서를 뒤적였다. 지진, 올빼미, 여우의 울음. 예로부터 이런 징조들이 겹치면 반드시 큰일이 뒤따랐다. 신하들의 낯빛이 하나같이 굳어 있었다.
정종은 그 보고를 듣고도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밤이 되면, 혼자 방 안에서 오래도록 뒤척였다. 비단 이불이 눅눅하게 느껴졌다.
'하늘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스스로 두려움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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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정종은 신하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사냥을 나갔다.
"전하, 천변(天變)이 잇따르는 때에 어찌 산야를 달리려 하시옵니까? 부디 궁궐에 머무르시며 덕을 닦으소서."
문하부에서 상소가 빗발쳤다. 그러나 정종은 고개를 저었다.
"짐이 오랫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하여 병이 날 지경이다. 사냥은 몸을 풀기 위함이니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라."
강음현(江陰縣) 원중포(原中浦) 들판에서 왕은 말을 달렸다. 앞서가는 노루를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싱그러운 바람이 귀를 스쳤다. 이 순간만큼은, 궁궐의 무거운 공기로부터 자유로웠다.
신하들도 마지못해 따라와 함께 음식을 나누었다. 밤에는 들판 가에 자리를 깔고 술잔을 돌렸다. 유정승(留政丞) 김사형(金士衡)이 멀리서 음식을 보내왔다. 잠깐의 해방이었다.
그런데 사냥을 마치고 궁으로 돌아오던 날, 하늘이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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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일(甲辰日), 큰바람이 불었다. 폭우가 쏟아졌다. 천둥이 울고, 번개가 대지를 갈랐다. 우박이 쏟아져 지붕을 두들겼다. 백성들이 겁에 질려 집 안으로 몸을 숨겼다. 허름한 가옥은 바람에 처마가 날아갔다.
그날 밤, 정종은 공후들과 내상(內相)들을 불러 모았다.
"어제 밤, 하늘이 이처럼 크게 경고를 하였다. 짐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것인가? 무엇이 천심(天心)에 어긋난 것인가?"
여러 신하들이 고개를 숙이고 엎드렸다. 한동안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때 한 신하가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높였다.
"태상왕 전하의 시위(侍衛)가 죄인을 감시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하옵니다. 부왕께서 몸소 그 고통을 말씀하셨다 하오니…"
그 말에 정종의 눈가가 흔들렸다.
아버지 이성계. 왕위에서 물러난 뒤, 아들들의 칼부림을 지켜봐야 했던 그 늙은 왕. 곁에 남은 시위 군사들도 사실상 감시에 가까웠다. 밖으로 나가지도, 아무도 만나지도 못하는 처지. 조선을 세운 사람이, 그 조선의 궁궐 안에서 죄인처럼 살고 있었다.
정종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러다 눈물이 흘렀다. 조용히, 소리 없이.
"그래. 아버님께 그런 마음이 있으셨구나. 그 마음을 모른 것은 내 탓이다."
공후들과 재상들이 모두 고개를 더욱 깊이 숙였다. 정종은 그 자리에서 명을 내렸다.
"태상왕 전하의 시위를 모두 거두라. 아버님의 말씀이라면 일체 따를 것이다."
소식이 전해지자, 이성계는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왕의 성품이 본래 순후하여 나를 아프게 하지 않더니, 이제 이처럼 효를 다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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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 되자, 조정에서는 병권(兵權) 분배 문제가 폭발했다.
궁궐 문루마다 갑옷 입은 병사들이 늘어서 있었다. 공후들이 저마다 사병을 거느리고 궁궐을 드나들었다. 창과 방패가 골목마다 번쩍였다. 마치 전시(戰時)와 다름없는 풍경이었다. 대간(臺諫)에서 연이어 상소를 올렸다.
"전하, 병권이 사방에 흩어져 있으니 언제 어디서 변이 날지 모르오이다. 종친 중 충의로운 한 사람에게만 병권을 맡기소서."
정종은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명을 내렸다.
강원도와 동북면의 병권은 정안공(靖安公) 이방원에게.
충청도와 경기는 익안공(益安公) 이방의에게.
풍해도와 서북면은 회안공(懷安公) 이방간에게.
그 명이 떨어지자 대전 안은 잠시 조용해졌다. 누군가의 입에서 가는 숨이 새어 나왔다. 이방원과 이방간. 이미 첫 번째 왕자의 난 때 각기 칼을 맞대던 사이였다. 이제 그들에게 병권이 쥐어진 것이다. 조정의 눈 밝은 신하들은 알고 있었다. 이것은 평화가 아니라, 폭풍 전야(暴風前夜)였다.
그날 밤, 밤하늘에서 커다란 유성(流星)이 유(柳) 자리 남쪽에서 미끄러졌다. 쟁반만 한 크기에, 불꽃처럼 꼬리가 붉었다.
서운관의 관원이 기록했다.
*'유성출류성남, 대여발, 광망여화(流星出柳星南, 大如鉢, 光芒如火).'*
유성이 류성 남쪽에서 나타났다. 크기는 발우만 하고, 빛의 꼬리는 불꽃 같았다.
수창궁 편전 창문 너머로 그 빛이 스쳐 지나갔다.
정종은 홀로 앉아 그 빛이 사라지는 방향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창살 너머 차가운 겨울 하늘은 깊고 고요했다. 하지만 그 고요 아래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땅 아래에서 불씨가 번지듯, 소리 없이.
겨울이 오고 있었다. 그리고 더 거대한 폭풍이, 그 겨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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