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소설록

정종(定宗) - 에피소드 1: 허수아비 왕 — 이방원의 그늘 아래

정보알랴주미 2026. 4. 1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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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定宗) - 에피소드 1: 허수아비 왕 — 이방원의 그늘 아래


1399년 정월 초하루.

새해 아침, 개성(開城) 수창궁(壽昌宮)의 대전에 백관들이 줄지어 섰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뜰에서 신하들은 엄숙하게 허리를 굽혔다. 조선 제2대 왕, 정종(定宗) 이방과(李芳果)가 용상에 앉아 그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왕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떠올랐지만, 눈빛은 어딘가 공허했다.

'내가 진짜 왕인가?'

반 년 전, 형제들의 피가 궁궐 돌바닥에 스며들던 그날 밤이 아직도 생생했다. 제1차 왕자의 난(王子의 亂). 넷째 동생 이방원(李芳遠)이 칼을 들어 정도전(鄭道傳)과 이복동생들을 베어낸 그날, 왕위는 이방과에게 떨어졌다.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은 자리였다.

아버지 이성계(李成桂)는 이미 태상왕(太上王)이 되어 물러나 있었다. 하지만 진짜 권력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조정의 모든 신하들은 알고 있었다.

정안공(靖安公),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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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이번 정초 하례 행사에 대해 여쭙고자 합니다."

좌정승 조준(趙浚)이 앞으로 나섰다. 노련하고 침착한 신하였다. 그런데 정종은 미묘한 것을 알아챘다. 조준의 눈이 잠시 대전 한쪽으로 향하는 것을. 그곳에는 이방원이 조용히 서 있었다. 조준이 여쭙는 것은 형식이었다. 결정은 이미 이방원과 나눈 것이고, 정종은 그저 승인하면 그만이었다.

정종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라."

경연(經筵)에서 신하들이 책을 펴고 강의할 때도, 정종은 성실하게 들었다.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도 했다.

"짐의 손발이 시리고 아프다. 격구(擊毬)를 좀 쳐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 어떻겠는가?"

신하들이 일제히 눈살을 찌푸렸다. 격구라니. 원나라의 놀이 아닌가. 도흥(都興)이니 유운(柳雲)이니 하는 무신들과 어울려 공을 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왕답지 않다는 상소가 빗발쳤다.

"전하, 격구는 잔원(殘元)의 황음한 군주들이 즐기던 바입니다. 부디 성현의 길을 따르시옵소서."

정종은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했다. 상소가 올라오면 화를 내기도 했다.

"짐이 격구를 치는 것이 어찌 부왕(父王)의 잘못으로 귀결되느냐! 말이 지나치도다."

어차피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격구라도 치지 않으면, 무엇으로 이 공허한 하루하루를 버텨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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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이 되자, 개경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궁궐에 까마귀 떼가 모여 시끄럽게 울고, 까치가 정전 처마에 둥지를 틉니다. 흉조가 잇따르니, 피방(避方)하여 옛 도읍 송경(松京)으로 환도하심이 어떠하오리까?"

서운관(書雲觀)의 아뢰는 말이었다. 정종은 종친과 재상들을 불러 모아 의견을 물었다. 모두가 입을 모아 개경을 말했다.

"개경은 궁궐과 신하들의 집이 온전합니다."

사실 백성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한양(漢陽)을 떠나 개경으로 줄을 잇고 있었다. 정종이 공식 환도를 선언하기도 전에, 도성 사람들이 먼저 짐을 챙겨 길을 나섰다. 막으려 해도 이미 물줄기처럼 흘러가는 백성들의 발걸음을 어떻게 막겠는가.

그보다 더 마음 아픈 것은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태상왕 이성계는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새벽녘에 몰래 개경으로 들어갔다. 떠나는 그의 눈빛에 깊은 부끄러움이 담겨 있었다.

"내가 한양으로 천도한 것은 혼자서 결정한 일이 아니었다. 신하들과 의논하여 정한 것이다."

스스로를 합리화하려는 말이었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한양에서 왕비가 세상을 떠났고, 아들도 잃었다. 고려의 옛 도읍 개경 사람들에게 부끄러워, 동틀 녘 아무도 없는 길로 몰래 들어간 것이다.

3월, 정종도 개경 수창궁(壽昌宮)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로써 조선의 첫 수도 한양은 불과 몇 년 만에 텅 빈 도시로 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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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경에 자리를 잡은 뒤에도, 정종의 하루는 비슷하게 반복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경연에 나가고, 신하들의 상소를 듣고, 때로는 허락하고 때로는 허락하지 않았다. 민생을 생각하며 충청도 선군(船軍)의 어염 역(役)을 면해주기도 했고, 흉년으로 굶주린 백성에게 곡식을 나눠주기도 했다. 이것만큼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결정에서는 언제나 이방원의 그늘을 느꼈다.

문하부(門下府)에서 이방원 편의 의안공(義安公) 화(和)의 권한을 줄이라는 상소를 올렸다.

"의안공께서 문하부 판사를 맡고 병권까지 쥐고 있으니, 숙부를 신하로 삼는 것이 고제(古制)에 어긋납니다."

정종은 허락하지 않았다. 이방원과 협력하는 인물을 건드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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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몸이 좀 불편했다. 의관이 오고 약재를 달였다. 신하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대전을 오갔지만, 정종은 이내 회복했다.

저녁 무렵, 일본 사신단이 도착했다. 정종은 연회를 열었다. 군기감(軍器監)에서 불꽃놀이를 피워 보여주었다. 밤하늘에 빛이 터지자, 왜인들이 경악하며 외쳤다.

"이것은 인력(人力)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늘의 신이 하신 것입니다!"

정종은 그 광경을 보며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자신의 웃음이었다. 신하들도 따라 웃었다. 잠시 대전 안이 환해졌다.

그러나 연회가 끝나고, 신하들이 하나 둘 물러가고, 대전에 홀로 남은 정종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여름 달빛이 뜰에 스며들었다. 어딘가에서 벌레 소리가 들렸다.

'왕이란 무엇인가.'

용상은 딱딱하고, 밤공기는 서늘했다. 이방원의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 존재는 언제나 가까이 있는 것 같았다. 이 궁궐 어딘가에서, 그 동생은 아직 깨어 앉아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을 것이다.

정종은 눈을 감았다.

내일도 똑같은 하루가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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