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8년 가을, 조선 건국 7년째.
한양의 경복궁 침전에 앉아 이성계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맑고 높았다. 기러기 떼가 남쪽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왕의 눈이 차갑게 굳어 있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눈물도 이미 말라버린 것 같았다.
방석이 죽었다.
방번도 죽었다.
신덕왕후 강씨가 낳은 두 아들—그토록 아끼고 지키려 했던 두 아들—이 이 세상에 없었다. 정도전이 죽었다. 남은이 죽었다. 조선을 설계하고 세운 이들이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다. 그리고 그 칼을 휘두른 것은 다름 아닌 그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었다.
"전하께서는 옥체를 보전하셔야 합니다."
신하들이 와서 아뢰었지만 이성계는 대꾸하지 않았다. 신하들이 두려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 조용히 물러났다.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든 나라의 왕이었다. 고려 말의 썩어빠진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세운 사람. 함경도 산골의 작은 지방 무관 집안에서 태어나 말 위에서 반평생을 보낸 사람. 왜구를 물리치고 홍건적을 격파하고 위화도에서 역사를 바꾼 사람. 그가 활시위를 당기면 표적은 빗나간 법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화살은 막을 수 없었다. 아비의 가슴에 박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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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이성계는 왕위를 내놓았다.
둘째 아들 방과(芳果)에게 왕위가 돌아갔다. 새 왕이 되어 정종(定宗)으로 불리게 된 방과는 형인 방원의 그늘 아래서 떨며 앉아 있었다. 궁 안 모두가 그것을 알면서도 말하지 않았다.
이성계는 이제 상왕(上王)이었다.
하지만 그는 상왕의 자리에 앉아 한양의 공기를 마실 수가 없었다. 아들들의 피 냄새가 궁 안 어디에서나 풍기는 것 같았다. 경복궁 뜰에는 신덕왕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흔적마저 이방원이 지워버리려 하고 있었다.
이성계는 짐을 꾸리게 했다.
"어디로 가시겠사옵니까?"
시종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함흥."
이성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짧고 단호했다.
함흥(咸興). 그가 태어난 땅이 아니었지만, 선조들의 뼈가 묻힌 곳이었다. 목조, 익조, 도조, 환조—이씨 가문의 뿌리가 그 땅에 자라났다. 그는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 한양의 신하들도, 새로운 권력도, 방원의 눈길도 없는 곳으로.
말 위에 오르자 몸이 무거웠다. 육십이 넘은 나이에 또 먼 길을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길은 전장을 향하는 길이 아니었다. 이 길은 등 뒤에 모든 것을 두고 떠나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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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으로 향하는 길은 멀었다.
한양을 벗어나자 공기가 달라졌다. 신하들의 시선도, 궁의 냄새도 사라졌다. 가을 들판이 펼쳐지고, 억새가 바람에 흔들렸다. 멀리 산이 보였다. 이성계는 말 위에서 그 산을 오래 바라보았다.
어릴 때 이 비슷한 산을 바라보며 활을 쏘았다. 표적을 맞추는 것이 기쁨이었다. 힘이 넘쳤다. 앞날이 환했다. 그때는 왕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잘 싸우고, 고려를 지키고, 백성들이 평안히 살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언제부터 길이 이렇게 어긋났을까.
위화도에서 말머리를 돌리던 그 순간부터였을까. 정몽주가 쓰러지던 선죽교의 그 피로부터였을까. 아니면 신덕왕후가 눈을 감던 그날 밤이었을까.
"아비."
어디선가 방석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성계는 말고삐를 당겼다.
고요한 들판이었다. 아무도 없었다. 바람만 불었다.
그는 다시 말을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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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나와 무릎을 꿇었다.
"상왕 전하, 어서 오십시오."
그들은 이성계를 알아보았다. 이 땅의 사람들에게 이성계는 조선의 왕이기 이전에 자신들의 토호(土豪), 선대로부터 이어진 익숙한 이름이었다. 이성계는 그들의 눈빛에서 두려움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보았다. 오래 잊고 살았던 감정이었다.
그는 함흥에서 조용히 지내기 시작했다.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활을 들었다. 몸이 녹슬지 않게 활쏘기를 계속했다. 예순이 넘었지만 손이 흔들리지 않았다. 화살이 표적을 꿰뚫을 때마다 가슴의 어딘가가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그게 그나마 살아 있다는 느낌이었다.
정종이 사신을 보냈다.
"상왕 전하, 아뢰올 말씀이 있사옵니다. 한양으로 환궁해 주시기를 청하옵나이다."
이성계는 사신을 보자마자 얼굴이 굳었다. 정종이? 아니, 방원이. 그 사신을 보낸 것은 방원이었다. 정종은 방원의 허수아비였다. 그것을 모르는 이 사신은 순진한 얼굴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성계가 손을 들었다.
"돌아가거라."
사신은 황급히 물러났다. 목이 붙어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이성계가 활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그 사신은 아무 잘못이 없었다. 잘못은 그를 보낸 자에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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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사신이 돌아가지 못한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함흥에서 온 소식은 항상 침묵이었다. 이성계가 보낸 사신을 죽이거나 억류한다는 이야기가 한양에 퍼졌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함흥에 들어가면 나오지 못한다."
이것이 '함흥차사(咸興差使)'라는 말의 시작이었다. 함흥으로 보내진 사신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 없는 사람을 가리켜 사람들은 이 말을 쓰게 되었다.
이성계는 이 소문을 알면서도 개의치 않았다.
방원이 자신을 한양으로 데려가려 하는 이유는 알고 있었다. 상왕이 함흥에 있으면 북방의 민심이 상왕을 따른다. 언제든 다시 군사를 일으킬 수 있는 명분이 된다. 방원은 두려웠을 것이다. 아버지의 활 실력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아들로서.
하지만 이성계는 군사를 일으킬 생각이 없었다.
그저 지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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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낯선 사람이 찾아왔다.
스님이었다. 이마가 둥글고 눈이 맑았다. 그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 합장을 할 뿐이었다.
"무학(無學)이옵니다."
이성계의 눈이 변했다. 무학대사. 그는 조선 건국 이전부터 이성계의 곁에 있었다. 한양의 터를 잡은 것도 무학이었다. 왕사(王師)로 불리며 이성계의 뜻을 가장 가까이서 헤아린 사람.
"여기까지 왔느냐."
"예."
"방원이 보냈느냐?"
"보내지 않아도 왔을 것이옵니다."
무학이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전하."
무학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방석 왕자와 방번 왕자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났사옵니다. 전하의 슬픔은 이 세상 그 무엇도 씻어줄 수 없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전하가 여기 계신 동안, 살아있는 이들이 혼란에 빠지고 있사옵니다."
이성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하께서 세우신 나라이옵니다. 전하의 피가 흐르는 자들이 그 나라를 다스리고 있사옵니다. 전하의 분노가 옳다 해도, 그 분노가 나라를 무너뜨려서는 아니 되지 않겠사옵니까."
이성계는 오래 침묵했다.
함흥의 밤은 깊었다. 불빛이 흔들렸다. 멀리 산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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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얼마 후, 이성계는 함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말 위에 오를 때 몸이 무거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무거움이었다. 분노가 아니었다. 체념도 아니었다. 어쩌면 수락(受落)이었다. 살아남은 자의 의무로서 살아내야 한다는 것.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성계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함흥의 산이, 선조들의 무덤이, 그를 태어나게 한 그 땅이 뒤에 남았다. 그는 그것들을 가슴에 담고 앞으로 나아갔다.
방원을 용서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분노보다 더 큰 것이 있었다. 자신이 세운 이 나라—조선—이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 그것이 마지막 남은 힘이었다.
1402년. 조선 건국 10년째. 태조 이성계는 함흥에서 한양으로 돌아왔다.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더 늘어 있었다. 눈빛은 예전처럼 날카롭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눈 속에 아직 무언가가 살아 있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그 자신처럼, 아직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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