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8년 8월 26일, 무더운 한여름 밤. 한양 궁궐.
이성계는 침전에 누워 신음했다.
육십이 넘은 몸은 이미 오래전부터 말을 듣지 않았다. 위화도에서 말등에 올라 창검을 휘두르던 불패의 장군이 이제는 병석에서 차가운 물이나 찾고 있었다. 신덕왕후 강씨가 죽은 뒤로는 더욱 기력이 쇠해졌다. 이복 동생들 가운데 가장 어린 방석(芳碩)이 세자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나라 안을 팽팽히 잡아당기고 있었지만, 왕은 그 긴장을 이미 느낄 힘조차 없었다.
그 긴장의 한가운데에는 정도전(鄭道傳)이 있었다.
조선을 설계한 사람, 경복궁의 이름을 짓고 육조 거리를 그은 사람, 새 나라의 뼈대를 세운 사람. 그러나 그는 이제 세자 방석을 앞세워 자신만의 나라를 완성하려 하고 있었다. 병석의 왕을 핑계로 왕자들의 사병(私兵)을 해산시키라는 명이 내려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는 하나였다. 사병이 없어지면 왕자들은 손발이 묶인다. 손발 묶인 왕자들은 저항할 수 없다. 저항할 수 없으면…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다.
이방원(李芳遠)은 닷새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었다.
---
서른두 살. 부왕이 첫 번째 군사를 일으킬 때부터 곁에서 칼을 갈았던 사람.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제거하도록 심복들을 보낸 사람. 개국의 공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했지만, 세자 자리는 강씨 소생의 막내 동생에게 돌아갔다.
그것만이라면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사병 해산. 이것은 참수(斬首)나 다름없었다. 사병이 없으면 궁 안에 발 한 번 잘못 들었다가 그것으로 끝이다. 정도전의 칼이, 남은(南誾)의 손이 목줄기를 쥐게 된다.
그날 밤, 이방원은 자신의 거처 마루에 앉아 숯불처럼 타오르는 눈으로 어둠을 바라보았다.
"결단하셔야 합니다."
심복 이숙번(李叔蕃)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내일은 없습니다. 정도전이 이미 손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 밤입니다. 오늘 밤이 기회입니다."
이방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이 무릎 위에 천천히 쥐어졌다. 이것이 반역인가, 아니면 생존인가. 대답은 이미 오래전에 정해져 있었다.
그때 문이 열렸다. 측근 하나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섰다.
"정도전이 남은의 집에 있습니다. 술자리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방원의 눈에 무언가가 번뜩였다.
"가자."
---
보름달이 뜬 밤이었다.
횃불 없이도 길이 보일 만큼 환했다. 이방원의 심복들은 소리를 죽이며 골목을 달렸다. 갑주(甲冑)를 입은 군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한양 도성 안을 가로지르는 그 행렬은 빠르고 조용했다. 밤이슬이 내린 기와 위로 달빛이 쏟아졌다.
남은의 집 앞에 다다랐을 때, 안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문이 부서지며 열렸다.
정도전은 술잔을 손에 든 채 굳어 버렸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뒤로 밀려났다. 누군가는 달아나려다 붙잡혔다. 남은도 그 자리에 있었다. 조선 건국의 주역들, 개국 이후 온갖 정사를 쥐락펴락하던 이들이 일순간 포위되었다.
"정 대감."
이방원이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차분했다.
"상왕께서 편치 않으신 것을 알면서 이렇게 즐기고 계셨습니까?"
정도전은 입술을 열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수십 년을 고려 말의 혼란 속에서 살아남고, 유배를 버티며, 새 왕조를 설계한 그의 머리가 이 순간만큼은 굳어 버렸다.
조선을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조선의 칼에 쓰러졌다. 그것은 권력의 아이러니였고, 혁명의 비극이었다.
그날 밤, 정도전과 남은은 죽었다.
---
동이 틀 무렵, 이방원은 궁으로 향했다.
침전에 누워 있던 이성계는 심상찮은 소란에 눈을 떴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무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모두 눈을 내리깔고 머뭇거렸다.
잠시 뒤, 그는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정도전이 죽었다. 남은이 죽었다. 그리고 어린 세자 방석과 그의 형 방번(芳蕃)도 유배 도중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뒤따랐다. 실록은 조심스럽게 그 죽음을 기록했지만, 그 의미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이성계는 오래 침묵했다.
아들이 아들들을 죽였다. 강씨 소생의 왕자들, 그가 그토록 아끼던 어린 방석과 방번이 이제 이 세상에 없었다. 그가 평생 칼 들어 싸웠던 것은 나라를 위해서였다. 그 나라가 자식들의 피를 먹고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이토록 고통스러울 줄은 몰랐다.
왕은 얼굴을 가렸다.
"방원이를 들여보내라."
그러나 이방원은 이미 대궐 뜰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버지를 향한 예를 갖추면서도, 그의 등은 똑바로 펴져 있었다. 굴복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힘의 선언이었다.
이성계는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아들의 눈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을 보았다. 위화도에서 말머리를 돌리던 그 단호함, 나라를 바꾸겠다는 결의를. 그러나 그것이 기쁨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었다.
---
그로부터 얼마 뒤, 이성계는 왕위를 내놓았다.
둘째 아들 이방과(李芳果)가 왕위를 이어받아 정종(定宗)이 되었다. 그러나 궁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았다. 진짜 권력이 누구 손에 있는지를.
이성계는 궁을 떠나 함흥(咸興)으로 향했다. 가장 사랑했던 아들들을 잃은 그 자리에서 멀리, 더 멀리로.
한양 궁궐에는 새로운 권력의 냄새가 짙게 깔렸다. 불타고 남은 재처럼, 혹은 아직 채 식지 않은 핏자국처럼. 조선의 왕자들은 피로 새 시대의 막을 열었다.
그리고 이방원은 기다렸다. 아버지의 분노가 가라앉기를, 그 다음 왕좌가 자신에게 오기를.
1398년 가을, 조선 건국 7년. 나라는 아직 젊었고, 피는 여전히 뜨거웠다.
'조선왕소설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정종(定宗) - 에피소드 1: 허수아비 왕 — 이방원의 그늘 아래 (0) | 2026.04.15 |
|---|---|
| 태조 — 에피소드 9: 상처받은 왕 — 함흥으로 떠나다 (2) | 2026.04.14 |
| 태조 — 에피소드 7: 도성을 쌓다 — 한양 천도와 새 수도 건설 (1) | 2026.04.09 |
| 태조 - 에피소드 6: 왕위의 무게 — 새 나라를 세우는 고통 (0) | 2026.04.08 |
| 태조 - 에피소드 5: 새벽을 열다 — 조선 건국, 1392년 7월 (0) | 2026.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