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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8년 5월, 압록강 위화도(威化島).
비가 사흘째 내리고 있었다.
이성계(李成桂)는 진흙투성이 섬의 끝에 서서 강 건너편을 바라봤다. 요동(遼東)의 땅은 짙은 안개 속에 아득히 잠겨 있었다. 그의 등 뒤에는 5만의 병사들이 고립된 채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지쳐 있었다. 군마들은 불어난 강물에 막혀 앞으로도 뒤로도 나아가지 못했고, 병사들 사이에서는 역병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장군."
부관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빗속에서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첫 번째 여울에서 익사한 자가 수백 명입니다. 두 번째 여울은 더 깊어 건너기가 불가능합니다. 병사들이 무리를 지어 도망치는데, 왕께서는 잡히는 즉시 목을 베라 하셨으나 막을 수가 없습니다. 군중에는 이미 '이 전쟁은 죽으러 가는 것'이라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이성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강물을 바라보았다.
그는 두 달 전의 일을 떠올렸다.
봉주(鳳州)에서 우왕(禑王)이 그를 불렀을 때, 이성계는 이미 이 전쟁이 잘못된 것임을 뼛속까지 알고 있었다. 명(明)이 철령위(鐵嶺衛)를 설치하겠다는 통보를 보내왔고, 고려 조정은 분노로 들끓었다. 팔도도통사 최영(崔瑩)은 요동 정벌을 강행해야 한다고 외쳤고, 왕은 그 말에 취한 눈빛으로 장수들을 내려다봤다.
이성계는 왕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었다.
"전하, 지금 군사를 내보내는 것은 네 가지 이유에서 불가합니다."
우왕이 의자에 비스듬히 기댄 채 눈을 가늘게 떴다.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 맞서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아 불가합니다. 둘째, 한여름에 군사를 움직이는 것은 불가합니다. 셋째, 온 나라 병력이 원정에 나서면 왜구가 빈틈을 노릴 것이니 불가합니다. 넷째, 지금은 장마철이라 활시위가 풀어지고 대군에 역병이 돌 것이니 불가합니다."
사불가론(四不可論). 그것은 단순한 군사적 조언이 아니었다. 이성계는 역사의 흐름을 읽고 있었다. 명나라는 강대하고, 고려는 이미 지쳐 있었다. 이 전쟁은 시작해서는 안 되는 싸움이었다.
왕은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가 잠깐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날 밤, 최영이 왕의 귀에 속삭였고, 이튿날 우왕의 목소리는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이미 군사를 일으켰으니 되돌릴 수 없소. 이자송(李子松)의 꼴을 못 보셨소?"
반대하다 유배되어 죽은 그 이름이 공중에 걸렸다.
이성계는 군막으로 돌아와 조용히 앉았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부하들이 당황하며 물었다.
"장군, 어찌하여 그리 슬피 우십니까?"
이성계가 낮게 답했다.
"백성의 재앙이 이제부터 시작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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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그는 위화도에 서 있다.
강을 건넌 이후 병사들은 도망치고, 왕은 목을 베라 명하고, 그래도 행군은 멈추지 않는다. 거짓 소문도 돌았다. "이성계가 부하들을 이끌고 동북면으로 달아났다"는 말이 군중에 퍼지자 병사들이 동요했다. 좌군도통사 조민수(曺敏修)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조민수가 단기(單騎)로 달려왔다. 말에서 내리자마자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공이 가신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이성계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나는 가지 않는다."
그가 주위를 돌아보았다. 빗속에서, 장수들의 눈이 그에게 모였다. 이성계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우리가 상국(上國)의 경계를 범하면, 종사(宗社)와 백성의 화가 당장에 닥친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왕 혼자의 뜻이겠는가. 군왕의 곁에서 충언을 막고 있는 자들이 문제다. 왕을 직접 만나 화와 복을 아뢰고, 그 간신들을 제거하여 백성을 편안히 해야 하지 않겠소?"
침묵이 흘렀다.
빗소리만 들렸다.
그러다 한 장수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또 한 명. 그리고 또.
"우리 동방 사직의 안위가 공 한 몸에 달려 있습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회군(回軍).
이성계는 흰 말 위에 올랐다. 손에는 붉은 활, 화살에는 흰 깃. 그는 압록강 기슭에 말을 세우고, 5만의 병사들이 모두 강을 건널 때까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장맛비 속에서, 갑옷이 흠뻑 젖은 채로.
지친 병사들은 강을 건너며 그를 올려다봤다.
"예로부터 저런 사람이 없었고, 앞으로도 저런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속삭임이 빗소리에 섞였다.
군사가 모두 건넌 순간, 강물이 갑자기 크게 불었다. 마치 하늘이 그 결정을 기다렸다는 듯이. 조금만 늦었어도 군사는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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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초하루, 이성계의 황색 대기(大旗)가 개경(開京)을 향해 나아갔다.
도성 사람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술과 음식을 들고 달려나와 병사들을 맞이했다. 노인들은 산에 올라 발을 구르며 환호성을 질렀다. 최영의 군사는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무너졌다. 조민수의 흑색 대기가 영의서교(永義署橋) 앞에서 적군에게 밀렸을 때, 황색 대기는 이미 남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이성계는 암방사(巖房寺) 북쪽 고개에 올라 대라(大螺)를 한 번 불었다.
다른 군사들은 모두 나팔을 불었지만, 오직 이성계의 군사만이 소라를 불었다. 도성의 백성들은 그 소리를 듣고 말했다.
"이성계 장군의 군사다."
팔각전(八角殿) 앞에 군사가 수백 겹으로 에워쌌다. 우왕은 최영의 손을 붙잡고 오열했다. 최영은 두 번 절을 올리고 끌려나왔다.
이성계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일이 내 본심은 아니오. 그러나 이 나라가 편안하지 않고, 백성이 지쳐 원망이 하늘에까지 닿았기에, 부득이했소. 잘 가시오, 잘 가시오."
두 사람은 마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최영은 고봉현(高峯縣)으로 유배를 가며 탄식했다.
"이인임(李仁任)이 말했지. '이판삼사(李判三司)가 나라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그때는 화가 났는데, 이제 보니 그 말이 옳았구나."
우왕은 강화도로 쫓겨났다. 창왕(昌王)이 새로 즉위했다. 이성계는 우시중(右侍中)에 올랐다.
그러나 이성계는 알고 있었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위화도에서 말 머리를 돌린 그 순간, 고려의 시계는 멈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사는 새로운 페이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페이지에 누구의 이름이 새겨질지, 아직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강을 건너던 그날, 이미 모든 것은 정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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