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조 - 에피소드 1: 신화의 시작 — 활의 신, 이성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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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6년, 고려 동북면 함주.
늦가을 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왔다. 황토빛 초원 위로 마른 잎새들이 날리고, 멀리 두만강 너머 북방의 산줄기가 차갑게 빛났다. 이 땅은 고려도, 원나라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변방이었다. 여진족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고, 적이 언제 나타날지 알 수 없는 곳. 이런 땅에서 살아남는 법은 하나뿐이었다. 강해지는 것.
담벼락 위에 까마귀 다섯 마리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소년 이성계는 아무 말 없이 화살을 뽑아 시위에 걸었다. 열다섯 살. 아직 수염도 나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눈빛만은 달랐다. 맑고 날카롭게 번쩍이는 그 눈은, 이미 먹잇감을 포착한 맹금류의 눈이었다. 보통 소년들이 또래 아이들과 공기놀이를 하거나 냇가에서 물고기나 잡을 나이에, 이성계의 손에는 이미 시위를 당기는 굳은살이 배어 있었다.
"저것들을 쏠 수 있겠느냐?"
서모 김씨가 낮게 물었다. 반은 장난, 반은 진심이었다. 아무리 활을 잘 쏜다 해도 다섯 마리를 동시에 맞힌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첫 화살이 날아가는 순간 나머지는 겁에 질려 날아가 버릴 테니까. 그녀는 이성계가 그냥 웃으며 "어렵겠습니다"라고 할 줄 알았다.
이성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눈을 가늘게 좁히며 시위를 당겼다. 주변의 소음이 사라지는 듯했다. 바람 소리도, 말 발굽 소리도, 서모의 숨소리도 모두 사라지고, 오직 화살촉과 저 다섯 마리 까마귀만 남았다.
탁—
단 한 발의 화살이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까마귀 다섯 마리가 하나씩 차례로 담 아래로 떨어졌다.
서모 김씨의 눈이 커졌다. 입이 벌어졌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화살 하나로, 다섯 마리 모두를 꿰뚫은 것이다. 화살이 첫 번째 까마귀를 치고, 그 충격이 연쇄로 나머지를 쓸어버렸다. 아니면, 정말로 화살이 허공에서 방향을 꺾은 것인지도 몰랐다. 두 눈으로 봤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말하지 마라."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경외감과 불안감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절대로, 아무에게도 이 일을 말해선 안 된다."
이성계는 바닥에 떨어진 까마귀들을 묵묵히 바라봤다. 그의 표정에는 자랑스러움도, 놀라움도 없었다. 그저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해낸 사람처럼, 조용히 화살집에 손을 집어넣었다.
이것이 훗날 조선을 세우게 될 사내의 첫 번째 전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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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의 활 솜씨에 얽힌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어느 여름날, 냇가에서 몸을 씻고 나온 그는 느닷없이 덤불에서 담비 한 마리가 뛰어나오는 것을 봤다. 급히 화살을 쥐고 쏘았다. 한 마리가 쓰러졌다. 그러자 또 한 마리가 나왔다. 쏘았다. 또 쓰러졌다. 그다음 마리, 또 그다음 마리가. 마치 담비들이 스스로 줄을 서서 화살을 맞으러 나오는 것 같았다. 이성계는 쏘고, 쏘고, 또 쏘았다.
스무 마리. 스무 발. 단 하나도 빗나가지 않았다.
또 다른 날에는 친구들과 함께 사냥을 나갔다가 이두란이라는 동료와 함께 사슴 한 마리를 쫓게 됐다. 사슴이 쓰러진 나무 아래로 달아나자 이두란은 말을 세우고 돌아갔다. 나무 때문에 말이 지나갈 수 없어서였다.
이성계는 달랐다.
말에 박차를 가하며 그대로 돌진하더니, 나무 위를 훌쩍 뛰어넘었다. 말이 나무 밑을 통과하는 동안 이성계는 공중에서 자세를 유지한 채 다시 말 위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사슴을 잡았다.
이두란이 멍하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공은 하늘이 내린 천재야. 사람의 힘으론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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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환조 이자춘은 동북면에서 이름을 날리는 무인이었다. 아들이 자라자 환조는 이성계를 사냥에 데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에 환조는 이성계가 꺼낸 화살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무겁고 길다란 화살촉에, 덩치 큰 사내도 제대로 당기기 어려운 강궁. 날카로운 매 깃털이 달린 거대한 화살. 이건 사람이 쓸 수 있는 무기가 아니었다.
"이건 너무 무겁다. 사람이 쓰는 물건이 아니야."
아버지는 화살을 빼앗아 땅바닥에 던졌다.
이성계는 조용히 그것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리고 노루 일곱 마리가 달아나는 것을 향해 달리는 말 위에서 시위를 당겼다. 일곱 발. 일곱 마리. 하나도 빗나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웃었다. 처음에는 웃음을 참으려 했는데, 결국 참지 못하고 대소하며 웃었다.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동북면 도순문사 이달충이 조용히 환조에게 다가와 귓속말했다.
"공께서는 아직 모르시는 것 같소. 저 아이가 공보다 훨씬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오. 공의 가문을 빛낼 자는 저 아이 외에 없소이다."
환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뭔가 반박하고 싶었지만, 방금 본 광경이 눈에 선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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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살에 처음 관직에 나간 이성계는 공민왕 앞에서 처음으로 실력을 드러냈다.
당대 최고의 궁수로 이름난 찬성사 황상과 활쏘기 시합을 벌이게 된 것이다. 황상은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황제 앞에서 직접 활을 쏘아 황제의 팔목을 잡아당기게 했을 만큼 놀라운 실력자였다. 조정의 신하들은 모두 황상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황상이 먼저 쐈다. 오십 발 연속 명중. 구경꾼들이 술렁이며 탄성을 질렀다. 그러나 오십 발을 넘어서자 황상의 화살이 간혹 빗나가기 시작했다.
이성계의 차례가 됐다.
백 발. 단 한 발도 빗나가지 않았다.
공민왕이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성계, 그는 진실로 범상치 않은 사람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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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는 스물두 살에 활과 무예만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진짜 전설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홍건적 20만의 침략, 나하추 장군의 대군, 끝없이 밀려드는 왜구의 약탈, 그리고 마침내 고려 왕조 자체를 무너뜨리는 대혁명.
변방의 한 사내가 훗날 나라를 뒤엎을 것이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담벼락 위 까마귀 다섯 마리처럼, 역사도 그 앞에서 하나씩 떨어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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