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소설록

문종 - 에피소드 10: 군제를 다시 짜다 — 5사 개편과 무사보다 문풍

정보알랴주미 2026. 7. 7.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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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 - 에피소드 10: 군제를 다시 짜다 — 5사 개편과 무사보다 문풍



문종 원년 7월, 경복궁 사정전.

도승지 이계전이 서안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좀처럼 꺼내기 어려운 말을 고르고 있다. 그의 손에는 성균관 유생들의 출석부와 시권(試券) 몇 장이 들려 있다.

"전하, 근래 성균관의 교화가 심히 느슨해졌다는 말씀을 아뢰옵니다."

문종이 고개를 든다. 국상 중에도 그는 매일 경연에 나가고 윤대를 거르지 않는 임금이다. 학문에 관한 이야기라면 그의 눈빛이 먼저 반응한다.

"느슨해졌다니, 무엇이 말이더냐."

"유생들의 출석이 날로 줄고, 강의 성과도 예전만 못하옵니다. 세종조에는 지관사(知館事)를 따로 두어 성균관을 단속하였으나, 근래 그 자리가 비어 있은 지 오래되었사옵니다. 다시 지관사를 세워 학교의 기강을 바로잡으심이 마땅한 줄 아옵니다."

문종은 잠시 붓을 내려놓는다. 창밖으로 훈련원 쪽에서 군사들의 함성이 들려온다. 활 쏘는 소리, 말발굽 소리. 요 몇 달 도성 안팎의 화제는 온통 북방의 여진과 변경의 방비뿐이다. 이만주의 움직임, 평안도의 유민, 군마의 값. 조정의 모든 논의가 칼과 활 쪽으로 기울어 있다.

"이계전, 네 말이 옳다. 근래 사람들이 무사(武事)만을 좋아하니, 문풍(文風)을 다시 일으킬 사람이 필요하다."

문종의 목소리에 오랜만에 힘이 실린다.

"김종서를 지성균관사로 삼으라."

이계전이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한다. 김종서는 육진을 개척하고 여진을 벌벌 떨게 한 무장 중의 무장, 조정에서는 그를 두고 "호랑이 정승"이라 부른다. 그런 그에게 성균관의 학문을 맡기다니.

"전하, 김종서는 본디 병사(兵事)에 능한 신하이온데……"

"그러니 더 좋다."

문종이 옅게 웃는다.

"칼을 아는 자가 붓의 무게도 알아야 나라가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다. 김종서가 지성균관사가 되면, 무를 앞세우는 자들도 학문을 함부로 여기지 못할 것이다. 그가 변경에서 세운 공을 유생들도 알고 있을 터, 그런 사람이 학교를 단속한다면 오히려 기강이 더 서지 않겠느냐."

그것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다. 문(文)과 무(武), 그 두 축을 한 사람의 어깨 위에 나란히 얹어보려는 문종 나름의 균형 감각이다.

이어 병조에서 올라온 문서가 문종의 앞에 놓인다. 군제 개편안이다. 태조 이래 이어져 온 십이사(十二司) 체제 — 숫자만 많고 지휘 계통이 복잡하여 유사시 명령이 제때 서지 않는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병조판서가 아뢴다.

"십이사를 정비하여 의흥사(義興司)·충좌사(忠佐司)·충무사(忠武司)·용양사(龍驤司)·호분사(虎賁司), 다섯 개의 사로 다시 짜고자 하옵니다. 이리하면 지휘 체계가 간명해지고, 병력의 소속도 분명해질 것이옵니다."

문종은 문서를 꼼꼼히 읽어 내려간다. 그는 아버지 세종처럼 군사(軍事)에 화려한 전공을 세운 임금은 아니지만, 제도를 다듬는 눈은 누구보다 세밀하다.

"각 사의 소속 병종을 다시 한번 명확히 하라. 겸직으로 소속이 흐려지는 일이 없도록."

"명심하겠사옵니다."

"그리고 평안도의 군기(軍器) 또한 이번 기회에 함께 점검하라. 북방이 시끄러운 이때, 무기가 녹슬어 있어서는 아니 된다."

문(文)을 다시 세우려는 명과, 무(武)를 정비하려는 명이 같은 날, 같은 임금의 입에서 나란히 나온다. 신하들은 그제야 문종이 무엇을 하려는지 어렴풋이 깨닫는다. 그는 문과 무 어느 한쪽도 놓지 않으려는 임금이다.

그해 가을, 경연에서는 새로운 강의가 시작된다. 시강관이 《대학(大學)》의 첫 장을 펼쳐 읽는다. "대학지도(大學之道)는 재명명덕(在明明德)하며……" 문종은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되짚으며 묻는다.

"명덕(明德)을 밝힌다는 것은, 임금에게는 무엇을 뜻하는가."

시강관이 미처 답을 고르기도 전에, 문종이 스스로 풀어낸다.

"임금의 마음이 먼저 밝아야, 그 밝음이 백성에게까지 미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내가 먼저 사사로움에 흐려 있다면, 아무리 좋은 법을 내려도 백성은 그 그림자만 볼 것이다."

곁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관이 붓을 놀린다. 훗날 실록에는 이렇게 적힌다. "왕이 어려서부터 학문에 부지런하여 사서오경과 좌전, 강목, 송감에 두루 통달하였고, 성리학에 더욱 정밀하였으며, 친히 문장도 잘 짓고 초서와 예서에도 능하였으나 이를 남에게 보이기를 꺼렸다."

며칠 뒤, 문종은 밤늦도록 《근사록(近思錄)》을 통독한다. 시종이 등잔의 심지를 자르러 들어왔을 때, 문종은 책장을 어루만지며 나직이 감탄한다.

"성현의 말이 참으로 맛이 있구나."

그러나 학문의 고요함은 오래가지 못한다. 압록강 방면에서 급보가 올라온다. 평안도 감사 박이창이 군마를 압록강 너머로 이동시키던 중, 다수의 말이 강물에 빠져 죽는 사고가 벌어진 것이다. 변경의 군마는 나라의 방비와 직결되는 자산, 문종의 얼굴이 굳는다.

"관리 소홀이 명백하다. 박이창을 파직하라."

곧이어 후임으로 정이한(鄭而漢)이 평안도관찰사에 제수된다는 소식이 조정에 돈다. 그런데 뒷말이 무성하다.

"정이한이 이 자리에 오른 것은 실력이 아니라 권신에게 잘 보인 덕이라던데……"

사간원에서 조용히 술렁이지만, 아직 탄핵할 명분은 잡히지 않는다. 문종은 그 소문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지금 그가 급히 처리해야 할 것은 변방의 군마이지, 조정 안의 뒷말이 아니다.

같은 무렵, 사헌부에서는 다시 이징석(李澄石)의 양산 둔전 문제를 들고 나온다.

"이징석이 사사로이 점거한 둔전을 환수하소서."

문종은 예전에도 이 사안을 접한 적이 있다. 이징석과 그 아우 이징옥, 형은 탐욕스럽다 하고 아우는 청렴하다 하여 늘 나란히 입에 오르내리는 형제다. 문종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젓는다.

"지금은 아니다. 변경의 방비가 급한 이때, 굳이 그 문제를 크게 벌여 조정을 어지럽힐 필요는 없다."

신하들은 문종의 이런 판단이 답답할 때도 있다. 시비를 명백히 가리기보다, 때를 살펴 미루는 쪽을 택하는 임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뒤에는 나름의 저울질이 있다. 성균관의 문풍을 세우는 일, 군제를 다섯 사로 정비하는 일, 변방의 군마를 지키는 일 — 문종은 그 모든 저울추를 조금씩, 조급함 없이 옮겨가고 있다.

그해 가을이 저물 무렵, 김종서는 지성균관사의 인印을 받아 성균관에 처음 발을 들인다. 육진의 눈보라 대신 서책의 먼지 냄새가 그를 맞는다. 유생들은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이 노장을 바라본다. 김종서는 그들 앞에서 짧게 한마디를 남긴다.

"내가 변경에서 지킨 것은 나라의 땅이었다. 너희가 이 안에서 지켜야 할 것은 나라의 정신이다. 어느 쪽이 가벼운지, 나는 아직 정하지 못하였다."

그 말에 유생들 사이에 낮은 웅성거림이 인다. 칼을 쥐던 손이 붓을 쥔 자들의 스승이 된 순간, 문종이 그리던 문무의 균형은 비로소 사람의 얼굴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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