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종 원년 5월, 함흥부에서 파발이 올라온다.
말을 탄 역졸이 사흘 밤낮을 달려 도성에 닿았을 때, 그의 도포자락은 땀과 흙먼지로 얼룩져 있다. 그가 품에서 꺼낸 것은 함길도관찰사의 장계 한 통. 그런데 그 안에 든 것이 예사롭지 않다. 하얀 옥합 속에 든, 반쯤 굳은 이슬 같은 것.
"함흥부 원천사(元川寺) 뒤뜰 늙은 버드나무에서 나온 것이라 하옵니다. 색은 맑고, 맛은 꿀과 같사온데…… 나뭇가지마다 방울방울 맺혀 흘러내렸다 하옵니다."
승정원이 술렁인다. 도승지 이계전이 옥합을 열어 손끝으로 살짝 찍어 맛을 본다. 정말로 달다. 그의 얼굴에 묘한 흥분이 번진다.
"이것이 그 옛말에 이르던 감로(甘露)가 아니겠습니까. 하늘이 성군의 다스림에 감응하여 단 이슬을 내린다 하였으니……"
그 말에 편전 안 공기가 술렁인다. 승지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다. 나라에 상서로운 조짐이 나타났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퍼질 것이다. 세종이 떠난 지 겨우 일 년, 아직 백성들 사이에는 젊은 임금이 과연 아비만 한 성군이 될 수 있을지 묻는 눈길이 남아 있다. 이런 때에 하늘이 상서를 내렸다는 소문은 그 물음에 다시없을 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옥합을 앞에 둔 문종의 얼굴에는 흥분이 없다.
그는 등에 아직 낫지 않은 종기를 안고 있다. 아버지의 삼년상을 치르며 하루도 편히 눕지 못한 몸. 밤마다 식은땀에 젖어 깨는 나날 속에서, 그는 오히려 평소보다 더 차분히 사물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좋은 소식일수록 한 번 더 의심하는 버릇.
"그것이 정말 하늘이 내린 이슬이더냐."
문종이 묻는다. 목소리는 낮고, 서두르지 않는다.
이계전이 답한다. "북방 백성들이 성상의 어진 정치에 감읍하여 하늘까지 감동시켰다 여기고 있사옵니다. 이 일을 사관에 기록하고, 팔도에 반포하여 백성들의 사기를 돋우심이 어떠하올지……"
편전 안 대신들 몇몇도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조정에는 이런 화제가 필요하다. 국상의 무게, 북방 여진의 위협, 계속되는 흉년 — 그 모든 무거운 소식들 사이에서 이 하나의 달콤한 소문은 백성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가볍게 해줄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나쁠 것 없는 선택이다.
문종은 잠시 옥합 속 노결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과인이 듣기로, 노결이란 가문 날이 오래 이어지면 나뭇진이 마르며 엉기어 생기는 것이라 하더라. 근래 함길도에 비가 적었다 하지 않았느냐."
황보인이 옆에서 답한다. "그러하옵니다. 삭주와 함흥 일대는 봄부터 가뭄이 심하였사옵니다."
"그렇다면 이는 하늘이 상서를 내린 것이 아니라, 가뭄이 만든 것일 뿐이다."
편전이 조용해진다. 이계전이 다시 입을 연다.
"하오나 전하, 예로부터 성군의 시대에는 하늘이 상서로 응답한다 하였고, 백성들도 이미 그리 믿고 기뻐하는 중이라 하옵니다. 이제 와 이를 부인하시면……"
"백성이 기뻐하는 것과, 조정이 거짓을 사실인 양 기록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문종의 목소리가 조금 더 분명해진다.
"과인이 만약 이것을 감로라 칭하고 사관에게 기록하게 한다면, 훗날 사람들은 오늘의 가뭄을 잊고 오직 상서만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 또 비가 마르고 나무가 진을 흘리면, 누군가는 또다시 하늘의 뜻이라 아뢸 것이요, 과인의 후사(後嗣) 또한 그 거짓에 기대어 정치를 편히 하려 들 것이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춘다. 창밖으로 늦봄의 마른 바람이 지나간다.
"그리 되면 나라는 하늘의 눈치를 보는 법을 배우지, 백성의 살림을 살피는 법은 잊어버리게 된다."
황보인이 낮게 고개를 숙인다. 그 역시 평안도의 실정을 가장 잘 아는 대신이다. 삭주 본영을 옮기자는 논의도 실은 이 가뭄과 무관하지 않다 — 물이 부족한 변방에 계속 병영을 두는 것이 온당한지, 그는 이미 여러 차례 장계를 올린 바 있다. 문종은 노결의 소문 앞에서도 그 보고를 잊지 않고 다시 챙긴다.
"삭주 본영을 옮기는 일은, 지세를 다시 살핀 후에 정하라. 서두를 일이 아니다."
강화부에서는 새 목장 자리를 살피자는 논의도 함께 올라와 있다. 진법도(珍法島)에 마필을 놓아기를 만한 땅이 있다는 보고다. 문종은 그 문서에도 짧게 답을 적어 내린다. 목장은 실용의 문제이지, 하늘의 뜻을 물을 일이 아니다.
평안도에서는 환자(還上) — 봄에 꾸어준 곡식 — 를 갚지 못하는 백성이 속출한다는 장계도 함께 올라와 있다. 문종은 그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는다.
"흉년이 거듭된 고을은 환자의 절반을 탕감하고, 형편이 더 어려운 곳은 전액을 면제하라."
이계전이 조심스레 다시 아뢴다. "노결에 관한 일은 그리하면 어찌……"
"그 옥합은 함흥부로 돌려보내되, 사찰과 관아에 잘 나눠주어 백성들 입이나 즐겁게 하라 일러라. 다만 사관에게는 이르지 말라. 하늘의 상서가 아니라, 그저 가문 봄에 나무가 흘린 눈물일 뿐이다."
그 한마디로 편전의 술렁임이 가라앉는다.
방을 나서는 대신들의 표정은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아쉬운 얼굴이고, 어떤 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하위지처럼 젊은 사관들은 오히려 이 장면을 마음에 새긴다. 임금이 스스로에게 유리한 미신조차 거절하는 모습을, 그들은 실록의 붓끝으로 옮겨 적고 싶어진다.
그날 밤, 문종은 다시 종기의 통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시강원에서 올라온 서책을 뒤적이며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백성들은 단 이슬 한 방울에 기뻐하고, 나는 그 이슬 하나로 나라를 속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리하면 다음 왕은 진짜 재해 앞에서도 상서를 찾을 것이다."
그는 옥체가 편치 않은 임금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이 봄, 그는 하늘의 이름을 빌려 자신을 꾸미지 않았다. 대신 가뭄과 흉년, 병영과 목장, 환자와 백성들의 살림 — 그 지루하고 달지 않은 일들을 하나씩 챙겼다.
이튿날 아침, 이계전은 다시 편전에 들어 어제 일을 조심스레 아뢴다.
"전하, 신이 밤새 생각해보았사온데…… 어제 하교하신 뜻이 옳으신 줄 아옵니다. 다만 신은 걱정이 하나 있사옵니다. 후일 정말로 하늘이 상서를 내리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전하께서 이를 또 가뭄 탓이라 하시겠습니까."
문종이 옅게 웃는다. 그가 웃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런 날이 오면, 응당 기뻐하고 감사할 것이다. 다만 그날에도 먼저 살필 것은 하늘의 뜻이 아니라 백성의 곳간이겠지. 곳간이 차 있어야 상서도 상서로 보이는 법이다. 곳간이 빈 채로 하늘만 우러르면, 그것은 상서가 아니라 위안 삼는 거짓일 뿐이다."
이계전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물러난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이날의 문답이 오래도록 남는다. 훗날 그는 실록청에 나아가 이 일을 사초(史草)에 적을 것을 청하게 되는데, 그때 다른 사관 하나가 묻는다. "폐하께서 굳이 기록하지 말라 하신 일을 어찌 남기려 하십니까." 이계전은 답한다. "전하께서 감추라 하신 것은 거짓 상서이지, 그것을 거절한 전하의 마음까지 감추라 하신 것은 아니지 않겠소."
그렇게 하여 함흥의 노결 이야기는 두 겹으로 전해진다. 하나는 백성들 사이에 퍼진, 하늘이 내린 단 이슬의 소문. 다른 하나는 사관의 붓끝에 남은, 그 소문을 스스로 거절한 젊은 임금의 이야기.
함흥의 늙은 버드나무는 이듬해에도 마른 봄을 견뎌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나무가 흘린 달콤한 눈물 앞에서, 적어도 한 임금은 눈을 감지 않고 똑바로 보았다. 백성들에게는 꿀처럼 달콤한 이야기 한 조각을 남겨주면서도, 스스로는 그 달콤함에 취하지 않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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