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소설록

문종 - 에피소드 6: 김종서, 변방을 묻다 — 여진과 이만주의 그림자

정보알랴주미 2026. 7. 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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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 - 에피소드 6: 김종서, 변방을 묻다 — 여진과 이만주의 그림자



문종 즉위년 9월, 한양의 아침은 이미 서늘했다.

경복궁 사정전(思政殿) 안, 문종 이홍위는 이른 조회를 마치고 경연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즉위한 지 반 년. 아버지 세종이 30여 년간 쌓아올린 나라를 물려받은 그는 날마다 쏟아지는 상소와 보고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기분을 떨치기 어려웠다. 오늘도 안건이 산더미였다.

"판중추원사 한확이 입시하였나이다."

내관의 고개 낮춘 목소리에 문종이 고개를 들었다. 한확, 예순을 바라보는 이 노신(老臣)은 평안도 감사를 지낸 인물이었다. 그가 북방에 대해 입을 열 때면 항상 심상치 않은 소식이 따라왔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전하. 신이 평안 감사 재직 시 직접 파악한 유민(流民)의 수가 만 명을 넘었사옵니다."

"만 명이라고?"

"그뿐이 아니옵니다. 작년에 김종서 대감께서 다시 조사한 결과, 추가로 구천 명이 더 밝혀졌사옵니다. 합산하면 일만 구천여 명, 거기에 누락된 자까지 더하면 실로 헤아리기도 어렵사옵니다."

문종의 눈썹이 가늘게 모였다. 이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돌고 있다는 말이었다.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이런 숫자들과 싸우는 일이기도 했다.

"원인이 무엇인가."

"여연(閭延)과 무창(茂昌), 두 고을에 남도(南道) 백성들을 수자리로 보내기 때문이옵니다. 저 두 곳은 깊은 산골에 박혀 험한 고갯길로 막혀 있사옵니다. 처음 말 두세 필을 끌고 떠난 자들이 굶주림에 말을 팔고, 군장(軍裝)마저 내다 팔다 보면 가진 것이 씨가 마르고, 결국 집으로도 못 돌아오는 처지가 되옵니다. 해마다 이러하니 남도의 산업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옵니다."

좌참찬 정갑손도 거들었다.

"옛사람 중에는 백성을 위해 땅을 버린 이도 있었사옵니다. 하물며 두 작은 고을이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없애도 나라에 손해가 없고, 없애지 않으면 백성이 죽어나갑니다."

문종은 잠시 침묵했다. 여연과 무창은 아버지 세종이 어렵게 개척해 세운 곳이었다. 그 땅 하나하나에 피와 땀이 배어 있었다. 선왕의 뜻을 쉽게 뒤집을 수 없었다.

"선왕께서 어렵게 세우신 곳을 갑자기 없앨 수는 없다."

문종의 목소리는 확고했지만, 거기에는 고통도 담겨 있었다.

"다만 남도 백성들을 그곳에 보내는 수자리만은 폐지하도록 하겠다."

타협이었다. 완전한 해결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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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의 장막이 걷히고 경연(經筵)이 시작되었다. 지경연사(知經筵事) 김종서가 두꺼운 서책을 안고 들어왔다.

김종서. 세종의 총애를 받아 두만강 너머 여진족의 땅을 개척하며 6진을 완성한 인물. 이제 나이 예순을 훌쩍 넘겼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북쪽 하늘을 향해 날카롭게 빛났다. 사람들은 그를 '호랑이 재상'이라 불렀다. 하지만 오늘 그 호랑이의 얼굴에는 근심의 빛이 역력했다.

경서(經書)를 함께 읽던 중, 김종서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전하, 신이 아뢸 것이 있사옵니다. 근래에 이만주(李滿住)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소식이 들어오고 있사옵니다."

이만주. 그 이름이 나오자 경연청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여진족의 추장 이만주는 조선 북방의 가장 위험한 불씨였다. 세종 때 대규모 토벌을 당했지만,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만강 너머에서 세력을 다시 일으켜, 조선의 변방을 끊임없이 흔들고 있었다. 그 원한이 얼마나 깊은지, 김종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6진을 만들던 그 세월, 그는 이만주와 직접 맞서 싸운 사람이었으니까.

"좌의정과 우의정께서는 '이만주가 아무리 청해도 우리 북문으로 쳐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라 하셨사옵니다. 하오나 신의 생각은 다릅니다."

김종서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지금 몽골의 야선(也先)이 중원을 노리고 있어, 반드시 한두 사신을 보내 우리를 떠볼 것이옵니다. 이만주는 우리와 오랜 원한이 있습니다. 신은 몇 년 안에 반드시 한 번은 침입해 올 것이라 봅니다."

문종은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았다. 경서를 읽던 시간이 어느새 나라의 명운을 논하는 자리로 바뀌어 있었다.

"적이 오고 안 오는 것은 미리 알 수 없는 법이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라가 평온할 때에도 항상 적이 쳐들어온다는 마음으로 대비해야 한다. 우리의 병기를 다듬고, 우리의 군사를 훈련시키는 것, 이것이 나라를 지키는 진정한 장책(長策)이다."

김종서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변방의 수비가 매우 허술하옵니다. 각 도에 활과 화살을 더 많이 만들도록 명하소서."

"옳은 말이다."

문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를 덧붙였다.

"다만 한 가지, 근래에 우리가 북방 방비에만 전념한 나머지, 남방의 왜구 대비를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은가? 적은 북에서만 오지 않는다. 왜구의 발호를 막는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신하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어린 임금이 아니었다. 큰 그림을 보고 있었다.

"행성(行城)은 한꺼번에 쌓기 어려우니 우선 읍성(邑城)을 단단히 하여 스스로를 지키도록 하라. 궁시(弓矢) 추가 제작도 즉시 명하겠다. 세종대왕께서 총통(銃筒)을 이미 많이 만들어 두셨으니, 총통 주조는 잠시 멈추고 그 역량을 모두 활과 화살 생산에 쏟아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 얹었다.

"그렇게 하면 외방(外方)에 사신을 보내는 폐단도 줄어들 것이다."

경연청 밖으로 가을 바람이 스며들었다. 문종은 창밖 멀리, 눈에 보이지 않는 북쪽 하늘을 잠시 바라보았다. 이만주가 온다. 어쩌면 정말로 올지 모른다. 그 생각이 가슴 한쪽을 무겁게 짓눌렀다.

하지만 준비된 나라는 두렵지 않다.

아버지 세종이 그에게 남긴 것은 단순히 옥좌만이 아니었다.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자세, 그것이 진짜 유산이었다. 문종은 그 무게를 가슴에 새기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 나라를 지키는 일. 그것이 그가 매일 아침 옥좌에 앉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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