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종 원년 3월, 의금부 옥사(獄舍) 앞.
봄이라고는 하나 옥사 안까지 볕이 들지는 않는다. 그늘진 마당 한쪽에서, 늙은 아낙 하나가 옥문 창살에 매달려 흐느끼고 있다.
"나리, 제 아들이 옥에 갇힌 지 벌써 여섯 달입니다. 죄가 있으면 벌을 내리시고, 죄가 없으면 놓아주셔야 할 것 아닙니까. 어찌 여섯 달을 그저 가둬만 두십니까."
옥졸이 딱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 사람아, 나라고 어찌 알겠나. 형방(刑房)에서 아직 처결이 나지 않았다는데."
"처결이 안 났으면 언제 나는 겁니까. 그 사이 저희 집 논밭은 누가 갈고, 늙은 시아비는 누가 봉양합니까. 아들 하나 믿고 살던 집인데, 아들이 옥에 있으니 집안이 통째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아낙의 울음소리가 옥사 담장을 넘어 퍼진다. 그 소리를 마침 지나던 형조좌랑 하나가 듣는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무거운 얼굴로 자리를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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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편전.
형조판서가 문종 앞에 옥사 처리 현황을 담은 문서를 올린다. 문종이 문서를 펼쳐 든다. 한 장, 두 장, 넘길수록 미간이 좁아진다.
"이 사람은 옥에 갇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여섯 달째이옵니다, 전하."
"이 자는."
"여덟 달째이옵니다."
"그렇다면 이 자는."
형조판서가 잠시 머뭇거리다 답한다.
"…일 년이 넘었사옵니다."
문종이 문서를 서안 위에 내려놓는다. 한동안 말이 없다.
"죄가 무거워 오래 가두어 둔 것이냐, 아니면 그저 처결이 늦은 것이냐."
"솔직히 아뢰옵면, 후자가 적지 않사옵니다. 사건이 겹치고, 지방에서 올라오는 문서가 늦어지고, 담당관이 갈리면서 처음부터 다시 살피는 일도 있사옵니다."
"그 사이 죄인의 집안은 어찌 되었겠느냐."
형조판서가 답을 못한다. 문종이 낮은 목소리로 잇는다.
"내 오늘 낮에 들으니, 옥에 아들을 둔 한 아낙이 옥문 앞에서 울고 있었다더구나. 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반년 넘게 그 집안 살림이 통째로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전하께서 그 일을 어찌…"
"내가 직접 들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일이 한둘이겠느냐. 이 문서 안에 적힌 이름 하나하나가, 저마다 그런 사연을 지고 있을 것이다."
문종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간다.
"한 사람이 옥에 갇혀 있으면, 그 한 집안의 일이 모두 폐한다. 농사지을 자가 없어지고, 봉양할 자가 없어지고, 혼인할 나이의 자식이 혼인 시기를 놓친다. 그 원망과 억울함이 쌓이면, 그것이 곧 불화요 재앙이다. 이보다 큰 재앙이 어디 있겠느냐."
형조판서가 고개를 숙인다.
"하오나 전하, 옥사란 것이 본디 신중을 요하는 일이라, 서두르다 보면 도리어 억울한 판결이 날 수 있사옵니다."
"내 어찌 서두르라 하겠느냐. 다만 한없이 끄는 것을 그냥 두지 말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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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이 승정원과 형조, 의금부 당상들을 불러 모은다.
"당(唐)과 송(宋)의 옛 제도를 살펴보니, 옥사에도 기한이 있었다 한다. 크고 작음에 따라 처결의 기한을 정해 두어, 그 안에 반드시 판가름을 내렸다지."
도승지 이계전이 옛 문헌을 뒤적이며 아뢴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그리고 세종대왕께서도 일찍이 속전(續典)에 옥사 기한에 관한 조항을 두신 바 있사온데, 근래에는 그 시행이 느슨해진 듯하옵니다."
"그렇다면 아바마마의 뜻을 다시 세우면 될 일이다."
문종이 붓을 들어 직접 초안을 잡는다.
"큰 옥사는 아흔 날, 중간 옥사는 예순 날, 작은 옥사는 서른 날. 이를 삼한(三限)이라 하여, 그 안에 반드시 처결을 내리도록 하라. 만약 기한을 넘기고도 처결이 나지 않으면, 그 까닭을 낱낱이 위에 보고하게 하라."
형조판서가 조심스레 묻는다.
"기한을 넘긴 관원은 어찌 다스리시겠사옵니까."
"우선은 벌하기보다 캐묻겠다. 어째서 늦었는지, 사건이 정말 복잡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게을렀던 것인지. 그것을 가려낸 뒤에 다스려도 늦지 않다."
문종이 붓을 내려놓고 잠시 신하들을 둘러본다.
"이 교지를 나라 안팎에 널리 알려라. 도성뿐 아니라 팔도의 관아에까지 미치게 하라. 한 사람의 죄인을 다스리는 일이되, 그 뒤에 딸린 한 집안의 삶을 함께 다스리는 일임을, 모든 관원이 새겨야 할 것이다."
이계전이 교지를 받들며 고개를 숙인다.
"삼가 받들겠나이다. 전하의 이 뜻이야말로 진정한 인정(仁政)이라 사료되옵니다."
문종이 고개를 젓는다.
"인정이라 부르기엔 이르다. 말로 정한 기한이 실제로 지켜지는지, 그것을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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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지가 내려진 지 며칠 뒤, 편전에 통사(通事) 김연이 들어온다. 명나라 북경에 사신단으로 다녀온 그가, 그곳에서 보고 배운 것들을 아뢰기 위함이다.
"전하, 북경에 머무는 동안 그곳의 석회 굽는 법을 눈여겨보았사온데, 우리 것보다 화력을 다루는 법이 정교하여 벽돌이 훨씬 단단하게 나온다 하옵니다. 또한 파손된 선박을 보수하는 법도 새로이 익혀 왔사옵니다."
문종의 눈빛이 밝아진다. 옥사 문제로 무거웠던 낯빛이 잠시 풀린다.
"그래, 그런 것들이야말로 백성의 살림에 직접 보탬이 되는 것들이다. 자세히 문서로 정리하여 공조(工曹)에 넘기라. 성곽 보수나 병선 수리에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명심하겠나이다."
"사신으로 나가 옛 문물만 구경하고 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실용의 것들을 배워 오는 일이 참으로 값지다. 그대의 노고를 잊지 않겠다."
김연이 물러난 뒤, 지중추원사 김종서가 들어와 또 다른 안건을 아뢴다.
"전하, 도성 안팎에 흩어진 원포(苑圃, 궁궐 소용의 채소밭) 가운데 실제로는 쓰임이 적은 곳이 여럿이옵니다. 그 땅을 백성에게 돌려주어 농사짓게 함이 어떠하올지요."
"그리하라. 궁에서 쓰지도 않는 땅을 굳이 움켜쥐고 있을 까닭이 없다. 다만 어느 곳을 돌려줄지는 신중히 가려서, 훗날 다시 필요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이어 진관수륙사(津寬水陸社)의 간사승(幹事僧) 각돈(覺頓)이 그간 절 이름을 빌려 공물을 대신 바치게 하던 일에 대한 보고가 올라온다.
"그 일은 이제 그만두게 하라. 절이 나라의 공물을 대납하는 구실을 하게 되면, 그것이 또 다른 폐단의 씨앗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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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문종은 다시 낮에 본 옥사 문서를 펼쳐 든다. 아직 처결되지 않은 이름들 위에, 그는 붓끝으로 가만히 날짜를 짚어 본다.
옥리도, 형조판서도, 심지어 이 나라의 법 자체도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기한을 정한다는 것은, 적어도 그 불완전함 앞에서 눈감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문종은 옥문 앞에서 울던 그 이름 모를 아낙을 떠올린다. 그 얼굴을 본 적은 없다. 그러나 그 울음소리는, 오늘 그가 내린 교지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흔 날, 예순 날, 서른 날."
그는 낮게 되뇌어 본다. 그 안에 한 사람의 삶이, 한 집안의 존망이 걸려 있다. 봄밤의 바람이 편전의 창을 스치고 지나간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이 젊은 임금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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