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 30년, 1448년 가을.
궁궐 깊숙한 곳, 밤이 내린 편전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 세종은 홀로 앉아 있었다.
손등에는 반점이 돋아 있었고, 눈두덩은 부어 있었다. 당뇨로 인한 시력 저하가 심해진 탓에 촛불이 두 개로 번져 보였다. 그러나 그는 붓을 들었다. 눈이 안 보이면 몸으로 기억하면 된다. 수십 년간 써온 궁서체는 손가락이 알아서 움직였다.
*내불당(內佛堂) 건립 명을 내린다.*
붓을 내려놓는 순간, 그는 오랜만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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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소식은 조정을 뒤흔들었다.
"전하! 이 무슨 해괴한 명이옵니까!"
영의정 황희가 먼저 나섰다. 여든을 넘긴 노재상의 목소리에는 아직도 힘이 있었다.
"선왕 태종 전하께서도, 태조 전하께서도 불교의 폐단을 경계하셨거늘, 전하께서 직접 궁 안에 불당을 세우신다 하시니 이는 선왕의 유훈을 거스르는 것이옵니다."
세종은 조용히 황희를 바라보았다. 사십 년 넘게 함께해온 신하였다. 젊을 때는 서로 다투기도 했고, 실수도 많이 저질렀지만,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잘 알았다.
"황 대감은 내가 불교에 빠졌다고 보시오?"
황희가 잠시 머뭇거렸다.
"그것이 아니오라…"
"소헌왕후가 작년에 세상을 떠났소."
짧은 침묵이 편전을 채웠다.
"마마의 명복을 빌고 싶소. 나이 들어 쇠한 몸으로 나가 절에 갈 수도 없는 처지이니, 가까이 기도할 공간이 필요한 것이오. 이것이 국정을 해치는 일이오?"
황희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마땅한 대꾸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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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정의 반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성균관 유생들이 들고일어났다. "척불(斥佛)의 나라에서 왕이 불당을 세운다"며 동맹 휴학에 들어간 것이다. 사헌부와 사간원도 줄줄이 반대 상소를 올렸다. 신숙주마저 조심스럽게 진언을 올렸다.
"전하, 유생들의 민심이 심상치 않사옵니다. 학업을 파하고 거리로 나서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사오니…"
세종은 신숙주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이 영민한 젊은 신하가 정치적 부담을 짊어지지 않으면서도 자신에게 물러서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세종은 알았다.
"신숙주, 너는 내 생각을 어떻게 보느냐?"
"전하의 뜻이 사적인 믿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소신도 압니다. 허나 전하는 한 분의 어른이 아니시라 백성의 어버이이시니…"
"그렇다."
세종이 부드럽게 말을 잘랐다.
"나는 백성의 어버이이기도 하지만, 그전에 한 사람의 남편이오. 왕비 없이 삼십 년을 함께한 사람을 보내고, 그 넋을 기리고 싶다는 마음은—왕이기 전에 사람의 마음 아니겠소?"
신숙주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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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는 계속되었다.
매일 망치 소리가 내전 깊숙이 울려 퍼질 때마다, 반대 상소도 함께 쌓였다. 세종은 그것들을 모두 읽었다. 그리고 모두 반려했다.
그에게는 이미 결심이 서 있었다. 논쟁에서 이기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한 가지를 하고 싶었다. 밤마다 홀로 등불을 켜고, 소헌왕후의 위패 앞에서 손을 모아 기도하는 것. 그것 하나였다.
"전하께서 너무 고집을 부리신다"는 말이 궁 안팎에 떠돌았다. 세종은 그 소문을 들을 때마다 작게 웃었다.
*고집이라.*
삼십 년간 신하들과 싸우며, 때론 지고 때론 이기며, 한글을 만들었다. 그것도 고집이었다. 측우기를 만들 때도, 향악을 정리할 때도, 농사직설을 편찬할 때도—신하들은 늘 반대했고, 세종은 늘 밀어붙였다.
그리고 후회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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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불당이 완공된 날 밤.
세종은 혼자 그 작은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시종들도 물렸다. 향을 피우는 것도 자신이 직접 했다.
낡은 무릎을 꿇고, 그는 눈을 감았다.
눈꺼풀 뒤로 소헌왕후의 얼굴이 떠올랐다. 젊었을 때의 모습도 아니고, 병상에 누웠을 때의 모습도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어느 날, 마루에 앉아 수를 놓으며 무언가 중얼거리던 모습이었다.
세종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오래 기다리게 했소."
그 말이 법당 안에서 조용히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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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부터 세종은 한글로 번역한 불경을 인쇄하는 작업을 명했다. 불교 경전을 한글로 풀어 백성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었다. 신하들은 또 반발했다.
세종은 웃었다.
"불경도 글이오. 백성이 읽을 수 있는 글이라면 막을 이유가 없소."
그의 눈은 침침했지만, 목소리는 분명했다.
한편, 안평대군과 수양대군이 종친들 사이에서 점점 이름을 날리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세종은 그 보고서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조용히 내려놓았다.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은 괜찮을 것이다.
그 이후의 일은—이미 하늘에 맡긴 지 오래였다.
내불당의 향은 밤새도록 타오르며 궁궐의 찬 공기를 채웠다. 세종은 그 향기 속에서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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