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 28년 10월의 경복궁, 밤이 깊었다.
편전 안에 촛불 몇 자루만이 타오르고 있었다. 세종은 책상 앞에 홀로 앉아 붓을 들었다. 곁에 선 승지 몇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왕의 붓끝에서 낯선 글자들이 하나씩 피어났다.
한자가 아니었다.
바로 2년 전, 세종 스스로 창제한 훈민정음 — 백성들을 위한 새 문자였다.
"전하, 저것은…."
승지 하나가 입을 열었다가 멈칫했다. 왕이 적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죄목서(罪目書)였다. 의금부에 갇힌 사간원 관원들의 죄상을 기록하는 공식 문서. 조선 개국 이래 단 한 번도 한자 이외의 문자로 작성된 적 없던 그 문서가, 지금 언문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붓이 멈췄다.
세종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승지를 바라보았다.
"의금부와 승정원에 이 문서를 내리라."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승지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면서도, 그 눈빛에는 당혹감이 역력했다.
이 일의 시작은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종은 사간원과 사헌부의 일부 관원들을 의금부에 가두라는 명을 내렸다. 그들이 왕의 처분에 거듭 반대하며 번번이 상소를 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처벌 자체가 아니었다. 관원들을 옥에 가두고 나자, 집현전에서 연명으로 상소가 올라왔다.
"사간원은 이목(耳目)의 관이옵니다. 그들에게 죄를 묻는다면 언로(言路)가 막히고 맙니다."
왕의 잘못을 간(諫)하고, 백성의 억울함을 듣는 기관이 사간원이었다. 그들을 처벌하면 앞으로 어느 누가 왕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겠냐는 논리였다. 학자들의 주장은 정당했고, 세종도 그것을 알았다.
하지만 왕은 굽히지 않았다.
사실 세종의 속마음은 복잡했다.
언문을 죄목서에 쓴 것은 단순한 처분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겨우 2년이 지났다. 신하들 중엔 아직도 이 새 문자를 얕잡아 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심지어 집현전의 일부 학자들조차, 한자만이 진정한 문자라고 여겼다.
'언문이란 게 쓸 만한 것인가, 아닌가?'
백성들 사이에선 이미 조금씩 퍼지기 시작했지만, 조정에서는 여전히 낯선 것이었다. 세종은 생각했다. 말과 글이 법이 되고, 죄목이 되고, 나라를 움직이는 도구가 될 때 — 비로소 문자는 살아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왕은 붓을 들었다. 가장 공식적인 문서에, 가장 새로운 문자로.
언문으로 쓰인 죄목서는 의금부에 전달되었다.
의금부 도사(都事)가 그 문서를 받아 들었을 때의 표정을 상상해보라. 평생 한자로 된 문서만 다루어온 관원이, 구불구불한 모음과 자음이 조합된 낯선 글자들을 하나씩 읽어내려갔을 것이다. 느렸지만 — 읽혔다. 틀림없이 읽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종은 또 하나의 명을 내렸다.
이과(吏科)와 이전(吏典)의 취재(取才) — 즉 관리를 뽑는 시험 — 에 훈민정음을 반드시 포함시키라는 것이었다.
집현전이 또다시 술렁였다. 실무 행정을 담당하는 관리들이 언문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곧, 언문이 행정의 공용어가 되어간다는 뜻이었다. 한자의 독점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그날 밤, 편전에 홀로 남은 세종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한양의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했다. 왕은 문득 생각했다. 저 별처럼 많은 백성들이, 자신이 만든 스물여덟 글자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편지를 쓰고, 노래를 부를 날이 오리라는 것을.
언문이 죄목서에 올랐다는 것은, 한낱 백성의 문자가 나라의 문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조정 신하들은 몰랐다. 왕이 붓을 들어 죄목을 적은 그 짧은 순간이, 한국어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첫걸음이었는지를.
세종은 조용히 촛불을 껐다.
그리고 새벽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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