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 28년 9월, 1446년.
창문 너머로 가을 달이 떠올랐다. 집현전 학사들이 마지막 손질을 끝낸 것은 바로 그 밤이었다.
정인지가 두 손으로 책자를 받쳐 들고 편전으로 들어섰다.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비단 표지 위에 네 글자가 선명했다.
**訓民正音 (훈민정음)**
"전하, 완성되었습니다."
세종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오른손만으로는 힘이 부족했다. 요 몇 해 동안 눈병과 당뇨로 시달려온 몸이라, 두 손을 모아 책을 받아들었다. 책장을 넘기는 손끝이 거칠었다. 임금의 손치고는 너무 많이 쓴 손이었다.
첫 장에는 세종 자신이 직접 쓴 서문이 실려 있었다.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소리 내어 읽으면서 세종의 목이 잠깐 조여들었다. 이 문장을 처음 마음속에서 구체화했던 것이 언제였던가. 이십 년도 전이었다. 어느 가을 밤, 형조에 올라온 죄인의 공초서를 읽다가 그만 멈춰버렸던 기억이 났다.
공초서는 한문으로 쓰여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한문을 전혀 모르는 평민 여인의 억울함이었다. 여인은 자신의 말을 제대로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 관리가 중간에서 말을 옮겼고, 옮기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것이 빠지고 뒤틀렸을지 — 세종은 그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전하, 앉으시겠습니까?"
신숙주가 조심스레 물었다. 세종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앉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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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박팽년, 이개, 이선로, 강희안, 최항.
여덟 명의 집현전 학사들이 방 한쪽에 조용히 서 있었다. 모두 지쳐 보였다. 몇 년 동안 이 작업에 매달렸다. 명나라로 건너가 음운학 전문가를 몇 번이나 찾아다니기도 했다. 신숙주 혼자 요동을 열세 번 왕복했다.
"정인지."
"예, 전하."
"해례를 짓느라 수고가 많았다. 너희들이 없었다면 이 책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정인지는 고개를 숙였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러나 세종은 알고 있었다. 훈민정음 스물여덟 자의 원리 자체는 자신이 혼자 구상했다. 학사들은 그 원리를 설명하고 예를 들어 보인 해례(解例)를 썼을 뿐이었다. 임금이 문자를 만들었다는 사실 — 그것은 학사들도 처음에는 믿기 어려워했다.
"전하께서 직접 만드셨다는 말씀이십니까?"
성삼문이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 믿지 않는 눈빛. 그러나 세종이 원리를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을 때, 학사들의 표정이 차례로 굳어갔다. 놀라움에서 경이로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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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박팽년이 물었다.
"조정에 먼저 알리고, 이어 팔도 감영에 책자를 내려 보낼 것이다. 형조에서는 죄인을 심문할 때 이 글자를 쓰도록 하고, 과거 시험에도 넣을 것이야."
학사들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몇몇은 안도한 듯 보였고, 몇몇은 여전히 복잡한 표정이었다.
세종은 그 표정들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
최만리가 작년에 상소를 올렸다. 집현전 부제학으로서, 동료 여섯 명과 함께 서명한 강한 반대 상소였다. *"오랑캐가 문자를 새로 만드는 것은 있어도 중화(中華) 문명권에서 이런 예는 없습니다. 중국을 섬기는 나라가 따로 문자를 만드는 것은 사대의 예에 어긋납니다."*
세종은 그 상소를 읽으면서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최만리를 불러 직접 따졌다.
"네가 운서(韻書)를 아느냐? 사성칠음(四聲七音)이 무엇인지 아느냐?"
최만리는 답하지 못했다.
"모르는 자가 어찌 이 문자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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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책의 첫 장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소헌왕후가 죽은 것이 반년 전이었다. 수양대군의 집에서 숨을 거두던 날, 세종은 옆에 있었다. 왕후는 마지막 숨을 내쉬면서 무슨 말인가를 하려 했는데, 끝내 소리가 되지 않았다.
아내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한 것이 세종은 아직도 한이었다. 그리고 그 한이 이 문자에 대한 마음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세상에 말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사람이 너무 많다.
백성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한자로 쓸 수 없었다. 글을 배운 사람만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배우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 관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이 스물여덟 자가 그것을 바꿀 수 있을까.
세종은 알 수 없었다. 당장 내일부터 모든 것이 달라지리라고 믿을 만큼 그는 순진하지 않았다. 양반들은 여전히 한자를 쓸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이 새 문자를 천하다고 여길 것이었다.
그러나 씨앗은 뿌려야 한다. 싹이 트는 것은 후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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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지, 해례 서문에 쓴 것이 있지 않느냐. 마지막 부분."
정인지가 잠시 생각하더니 조용히 외웠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루아침에 깨칠 수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세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이 글자의 핵심이다. 어렵지 않아야 한다. 누구나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배움이 귀한 자들만의 것이어서는 안 된다."
방 안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달빛이 창호지를 통해 부드럽게 들어왔다. 학사들의 얼굴 위로, 그리고 세종의 주름진 손 위로, 그리고 훈민정음이라는 네 글자 위로 달빛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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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세종은 조서를 내렸다.
"오늘부터 훈민정음을 반포하노라. 형조 및 의금부는 죄인의 공초를 이 글자로도 기록할 것이며, 이전(吏典)을 뽑는 시험에도 이를 포함할 것이다."
조서가 팔도로 내려갔다.
집현전 학사들은 그날 처음으로 집에 일찍 돌아갔다. 몇 년 만의 일이었다. 신숙주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총총했다.
한 글자를 세상에 내보내는 데 이렇게 오래 걸렸구나.
그러나 이 글자들이 앞으로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지는 —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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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은 1446년 9월 반포되었다. 세종이 직접 서문을 쓴 해례본은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한글의 직접적인 원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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