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0년 정월. 한양의 하늘은 유난히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경복궁 안에는 아직 새해를 맞는 하례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어전에는 왕이 없었다. 세자 이향(李珦)이 백관의 절을 받았다. 신하들은 고개를 조아리면서도 눈빛을 교환했다. 주상께서 이제 거동조차 힘드시다는 것을 모르는 자가 없었다.
세종은 영응대군의 사저에 있었다.
병환이 깊어 궁으로 돌아오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안구를 짓누르는 안질, 쉬지 않고 솟구치는 부기, 당뇨와 각기병이 사십 대 초부터 왕의 몸을 갉아먹어왔고, 이제 그 몸은 버티는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웠다.
"아바마마, 약을 드십시오."
안평대군이 은기(銀器)에 담긴 탕약을 들고 무릎을 꿇었다. 열네 번째 아들. 글씨와 시문에 뛰어나, 사람들이 "왕자 중에 글은 안평이 으뜸"이라 했다. 세종은 그 아들의 손을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수고하는구나."
그것이 전부였다. 그 말 한 마디에 안평대군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수양대군이 곧 교대하러 왔다. 위풍당당한 어깨, 강인한 눈빛. 그러나 아버지 앞에서만큼은 그도 그저 아들이었다. 두 아들이 번갈아 탕약을 들이고, 수발을 들었다. 밖에서는 신미(信眉) 스님이 들어와 낮은 목소리로 불경을 읽었다.
이성계가 세운 나라에서, 유교를 국시로 삼은 왕조에서, 세종은 끝내 불경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사간원 관원들이 몇 차례 상소를 올렸지만 세종은 묵묵히 받아넘겼다.
무엇이 마음을 위로하든, 그것이 해로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황희가 문안을 왔다. 아흔에 가까운 노재상. 허리가 굽어 지팡이에 의지해 들어왔지만, 그 눈은 여전히 맑았다.
"전하, 소신이 왔사옵니다."
세종이 눈을 떴다.
"경은 아직도 저 모양이구려."
"예?"
"나보다 늙었으면서 더 정정하니."
황희는 잠깐 멍하다가, 껄껄 웃었다. 세종도 웃었다. 힘없는 웃음이었지만, 웃음이었다.
두 사람은 한참을 말없이 마주 앉아 있었다. 서른 해 넘게 함께 나라를 꾸려온 주군과 신하. 말이 필요 없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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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이 왔다.
17일, 이른 아침.
영응대군의 동별궁에서 한 시대가 끝났다.
세종. 묘호 세종(世宗), 시호 장헌(莊憲). 향년 54세. 재위 31년 6개월.
궐 안의 종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 소리가 퍼져나가자 한양 거리 곳곳에서 통곡 소리가 터졌다. 시전(市廛) 상인들이 무릎을 꿇었고, 아낙들이 마당에서 하늘을 향해 울었고, 아이들은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어른들의 울음을 보며 덩달아 눈물을 흘렸다.
한글을 만들어준 임금이 갔다.
측우기를 만들어준 임금이 갔다.
배고픈 해에 구황(救荒) 곡식을 풀어준 임금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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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 이향은 빈전(殯殿)을 지켰다.
등창이 채 낫지 않은 몸이었다. 의관들이 쉬시라 했다. 신하들이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 세자는 들은 척도 않았다.
"아바마마 곁에 내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전부였다.
훗날 그가 문종(文宗)으로 즉위하지만, 재위 겨우 2년 3개월 만에 세상을 뜬다. 이미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던 그 몸이 다 닳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 문종은 아버지를 너무 사랑해서, 자신이 먼저 망가지는 것도 몰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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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英陵)을 새로 조영하기 시작했다.
세종의 시신은 이미 먼저 간 소헌왕후 심씨의 자리 옆에 묻힐 예정이었다. 둘은 살아서도 함께였고, 죽어서도 함께이기로 했다.
신하 정인지가 비문을 초했다. 그의 손이 묵을 찍으며 쓰고 멈추고, 또 쓰고 멈췄다. 무슨 말을 써야 이 임금을 다 담을 수 있겠는가.
결국 적었다 — 聖德神功(성덕신공).
성스러운 덕, 신묘한 공.
그것이 전부이기도 했고, 아무것도 아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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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자 거리에는 아직 울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어딘가 초가 지붕 아래, 한 노파가 앉아 한글로 쓴 손편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멀리 간 아들이 보낸 것이었다. 몇 해 전에야 겨우 글을 배워 읽게 된 것이었다. 그녀는 편지를 가슴에 꼭 안았다.
그 글자들을 만든 임금이 오늘 떠났다.
나라 안 어느 곳에서, 그 임금이 만든 글자로 오늘의 슬픔을 적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가장 큰 비명(碑銘)이었을지도 모른다.
별이 졌다.
그러나 별이 남긴 빛은, 오래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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