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 27년(1445년) 늦봄. 집현전 깊숙한 서재에 촛불 하나가 외롭게 타오른다.
정인지는 붓을 내려놓고 두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안쪽에 잔상처럼 남은 것들 — 수십 장의 원고, 수백 번의 교열, 그리고 무엇보다 그 글자들. 아직 세상에 공식 반포되지도 않은, 임금이 홀로 만들어낸 스물여덟 자의 새 문자.
"판서 어른, 10번째 장이 문제입니다."
곁에 앉은 권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손가락이 두루마리의 한 대목을 짚었다. 정인지는 눈을 떴다. 어둑한 불빛 아래서도 글자들은 선명했다.
한자(漢字)와 나란히, 낯선 기호들이 줄지어 있었다.
ㄱ, ㄴ, ㄷ, ㄹ…
"한자만으로는 조선 말의 소리를 담을 수 없소. 전하께서 친히 그리 하셨소."
정인지가 말했다. 권제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 글자들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최만리 부제학이 석 달 전 그 유명한 상소를 올렸을 때 궁궐이 발칵 뒤집혔다. '언문은 오랑캐의 것이오니 중화의 나라로서…' — 그 말이 아직도 귓속에 울린다.
그러나 전하는 굽히지 않았다.
안지가 먹을 갈며 입을 열었다.
"노래입니다. 《용비어천가》는 결국 노래지 않습니까. 노래는 누구나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말에 정인지는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았다. 봄밤의 달이 집현전 처마 위에 걸려 있었다. 이 노래가 궁중에서만 읊어지면, 그것으로 끝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 이 스물여덟 글자가 온 세상으로 퍼져나갈 씨앗이 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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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용비어천가》의 기획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조 이성계로부터 세종에 이르기까지 여섯 대 선조들의 이야기를 시로 엮어 왕조의 정통성을 노래하는 것 — 그것이 처음 명을 받았을 때의 과업이었다. 125장(章)의 시. 각 장마다 중국 역대 성군의 고사와 조선 선조들의 행적을 짝지어 "하늘이 정한 나라"임을 노래하는 송가(頌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처음에는.
문제는 전하의 명이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아니, 바뀌었다기보다 — 확장되었다. 세종은 한문으로 쓴 가사 옆에 그 새 글자로 조선말 원문을 병기하라 하셨다.
"백성이 읽어야 하오. 사대부만의 노래가 아니란 말이오."
임금의 그 말을 들었을 때, 집현전 학사들 중 몇몇은 눈을 내리깔았다. 아무도 대놓고 반대하지 않았다. 반대했다가 어찌 될지 최만리 사건으로 이미 보지 않았나.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달랐다. 정인지 자신도 처음엔 주저했다. 1443년 겨울, 임금이 그 스물여덟 자를 친히 완성했다고 알렸을 때, 그는 '어인 기이한 발상인가' 싶었다. 중국에 음운학이 있고, 이두가 있고, 이미 한자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데.
그런데 쓰기 시작하자, 달라졌다.
한자로는 두 줄이 필요했던 문장이 새 글자로는 한 줄에 담겼다. 무엇보다 — 소리가 살아있었다. 조선말의 높낮이, 끊음, 어감이 그대로였다. 한자를 모르는 이도, 이 글자만 익히면 소리 내어 읽을 수 있었다.
정인지는 그제야 알았다. 이것은 단순한 문자가 아니었다. 이것은 언어를 해방시키는 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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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째 장, 어떻게 고치실 겁니까?"
권제가 다시 물었다. 정인지는 원고를 당겨 읽었다. 태조가 함흥 시절 사냥 중에 화살로 매를 쏘았다는 고사를 담은 대목이었다. 한문 번역은 어렵지 않으나, 조선말로 옮기면 어미 처리가 까다로웠다.
"이리 쓰시오."
정인지가 붓을 들어 고쳤다. 새 글자들이 종이 위에 흘렀다. 안지가 옆에서 소리 내어 읽었다. 자연스러웠다. 살아있는 말 같았다.
세 사람은 밤새 작업을 이어갔다.
125장. 한 장 한 장이 단순한 시가 아니었다. 새 글자가 살아숨쉬는 증거였다. 세종이 2년 전 홀로 만들어낸 문자가 이제 진짜 쓰임을 얻는 순간이었다. 역사서 속이 아니라, 노래 속에서. 궁궐 의례 속에서. 그리고 언젠가 — 저잣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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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어느 아침, 임금이 편전에서 최종 원고를 받아들었다.
세종의 눈은 예전 같지 않았다. 지독한 소갈증(당뇨)으로 눈이 흐려진 지 오래였다. 신하들이 원고를 눈 가까이 들어 읽어드리려 할 때도, 임금은 손을 저었다.
"읽겠소."
천천히, 직접 읽었다. 한 장씩.
용이 날아오르는 노래. 왕조의 하늘을 노래하는 가사. 그러나 세종의 마음속에서 그것은 다른 의미였다. 이 노래를 통해 새 글자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다. 아직 공식 반포는 아니지만 — 이 125장의 노래가 새 문자의 첫 공식 무대다.
정인지는 임금의 얼굴을 살폈다. 병색이 완연했다. 작년부터 거의 모든 정사를 세자에게 넘기고 있었다. 신하들이 여쭤도, 임금은 "내 눈이 어두워 처리하기 어렵소"라며 물렸다.
그러나 이 원고 앞에서, 임금은 달랐다.
"정인지."
"예, 전하."
"이 노래가 영원히 불릴 것이오."
임금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흔들리지 않았다.
"새 글자와 함께. 조선말로, 조선 사람이, 조선 노래를 부르는 날이 올 것이오."
정인지는 고개를 조아렸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눌렀다. 학자는 울지 않는 법이었다. 그러나 가슴 한켠이 뜨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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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는 그해 완성되어 10권 5책으로 간행되었다.
조선 최초로 새 문자 — 훈민정음 — 로 쓴 국문 가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아직 훈민정음 해례본이 반포되기 전이었다. 세상은 이 새 글자를 공식적으로 알지 못했다. 그러나 125장의 노래 속에서, 그것은 이미 살아 숨쉬고 있었다.
하늘이 정한 나라. 용이 날아오른 이야기.
그리고 그 노래를 담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글자.
세종은 그해 7월, 병이 더 깊어져 세자에게 청정(聽政)을 맡겼다.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몸은 날로 쇠약해졌다. 그러나 《용비어천가》 간행 소식을 들었을 때, 신하들은 임금의 입가에서 희미한 미소를 보았다고 했다.
다음 해, 훈민정음 해례본이 반포될 것이었다.
그 전에, 새 글자는 이미 노래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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