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이 승하한 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봄이었다.
경복궁 사정전, 빈전의 곡소리가 아직 귓가에 남아 있는 그 어느 날 오전. 문종은 곤룡포 대신 흰 상복 차림으로 어좌에 앉아 있었다. 등의 종기는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 세자 시절부터 괴롭혀온 그 종기는, 왕이 된 지금도 그를 놔주지 않았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육체의 고통 사이에서 새 왕은 매일 버텨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분위기가 달랐다.
집현전 부제학 정창손이 앞장서고, 그 뒤로 학자들이 줄줄이 무릎을 꿇었다. 보통 간언이라면 한두 명이 조심스럽게 올리는 법이다. 그런데 오늘은 집현전 전체가 나온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표정은 두려움보다 결의에 가까웠다. 왕이 된 지 석 달도 안 된 임금 앞에서, 이 학자들은 주눅 들지 않았다.
"전하, 신 정창손, 감히 아룁니다."
정창손의 목소리는 낮지만 단호했다. 그는 두 손으로 상소문을 높이 들어 올렸다.
"대행 대왕(세종)의 국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사온데, 궁 안에서 불상을 만들고 금자 화엄경을 사경하며 대자암을 고쳐 짓는 공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후궁 마마들 중 삭발하여 비구니가 된 이까지 있다 하옵니다. 초상에 이 같은 토목 역사를 크게 일으키는 것은 예에 맞지 않으며, 유교를 국시로 삼은 나라의 도리와도 어긋나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궁 안에 정적이 흘렀다.
문종은 눈을 천천히 내리깔았다. 아버지가 그토록 아끼던 불상들, 세종이 직접 금자를 써가며 완성하려 했던 경전들. 그것을 지금 당장 멈추라는 말이었다.
"선왕께서 시작하신 일이오."
문종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화를 내지 않았다. 다만 그 안에 움직이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아버님의 명복을 비는 일입니다. 어찌 자식 된 도리로 그것을 멈출 수 있겠소?"
정창손은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전하의 효심은 천하가 아는 바이옵니다. 그러나 효는 반드시 예(禮)를 통해 표현되어야 하옵니다. 예가 무너진 곳에서는 효도 의미를 잃습니다. 불교적 의식은 선왕의 뜻이었을지 몰라도, 그것이 유교 국가의 왕통(王統)을 이을 새 임금이 취해야 할 도리는 아니옵니다. 백성은 위를 보고 배우는 법, 전하께서 지금 어떤 길을 택하시느냐에 따라 조선의 앞날이 달라질 것이옵니다."
정창손의 말 뒤로, 한편에서 대사헌 이승손이 또 다른 상소를 올렸다. 불교가 조선에 미치는 폐단을 조목조목 나열하며, 척불(斥佛)을 간청하는 내용이었다. 수십 개 항목이 빽빽이 적힌 상소문이었다. 사찰이 백성의 재물을 갉아먹고, 승려들이 군역을 피하고, 왕실의 불사가 민간에 잘못된 풍속을 심는다는 내용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문종은 그것을 끝까지 읽었다. 단 한 줄도 건너뛰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았다.
결국 그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불상 제작과 사경은 이미 진행 중이므로 멈추기 어렵다. 그러나 대자암 공사에 쓸 청기와를 굽는 작업만큼은 중단하겠다고 했다. 후궁의 삭발 문제 역시 다시 살피겠다고 했다.
신하들은 납득하지 못했다. 그러나 왕이 한발 물러선 것이니 더 밀어붙이기도 어려웠다. 편전 밖으로 물러나는 정창손의 뒷모습에는 무거운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그는 오늘 이긴 것인가, 진 것인가. 청기와 하나를 막아냈다고 승리라 할 수 있는가. 불상과 사경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다. 끝나지 않은 싸움이었다.
사실 문종이 신하들의 눈치를 전혀 안 보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세자로 훈련받으며 신하들의 말을 경청하는 법을 배웠다. 집현전의 학자들을 아끼고, 그들의 논리를 존중했다. 하지만 이 문제만큼은 달랐다.
아버지 세종이 살아 숨 쉬던 마지막 나날들, 그 눈빛이 아직 눈앞에 생생했다. 극심한 병을 앓으면서도 불경을 놓지 않던 손, 신미 스님의 독경 소리를 들으며 이 세상을 떠나가던 숨소리. 그것이 단순한 미신이었단 말인가. 단순히 잘못된 습관이었단 말인가. 문종에게 그것은 아버지의 죽음 그 자체였다. 그 기억을 부정하는 것은, 아버지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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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지난 4월이었다.
이번엔 의금부에서 보고가 올라왔다.
"전하, 청계사와 현등사에 있는 신미(信眉) 스님과 그 제자 도명을 잡으려 했사온데 사찰 안에서 소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승려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협조를 거부하고 있으니, 군사를 보내어 강제로 집행해야 할지 여쭤옵니다."
신미. 그 이름을 듣자 문종의 눈빛이 달라졌다.
신미는 세종이 특별히 총애했던 승려였다. 훈민정음 창제에도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세종은 임종 직전까지 신미를 곁에 두었고, 그에게 사실상 국사(國師)에 준하는 예우를 내렸다. 어떤 신하들은 신미의 영향력을 두려워했고, 어떤 신하들은 노골적으로 그를 미워했다. 그리고 지금, 드디어 그를 잡으러 간 것이다.
"신미 스님을 잡으러 갔다고?"
문종은 자리에서 일어날 듯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무슨 죄목으로?"
의금부 관원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사찰을 근거지 삼아 불법을 조장하고, 왕실을 혹세무민한다는 유생들의 고발이 있었사옵니다."
문종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늦봄의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어디선가 새가 울었다. 빈전 쪽에서는 희미하게 독경 소리가 흘러왔다.
"신미 스님은."
그가 낮게 말했다.
"선왕께서 생전에 공경하시던 분이오. 그분 없이 아버님이 마지막 날들을 어찌 견디셨겠소. 그 스님을 군사로 잡아들이는 것은 아버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오. 당장 철수하시오."
의금부 관원은 잠시 망설였다. 유생들의 정식 고발이 있었다. 법적 절차를 밟은 것이었다. 그러나 왕명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관원이 물러나자, 편전에는 다시 조용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문종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봄빛이 아까보다 조금 기울어 있었다. 집현전 학자들, 사헌부의 상소, 의금부의 보고. 즉위 석 달 만에 이미 사방에서 칼날이 날아들고 있었다. 그 모든 칼날이 향하는 곳은 하나였다. 아버지가 남긴 것들, 그것을 지키려는 아들의 손목이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효(孝)와 치(治) 사이에서 줄을 타야 하는 왕의 문제였다. 아버지의 세계를 지키면서도, 새 시대의 임금이 되어야 하는 모순. 신하들은 그에게 아버지를 버리라고 하는 셈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를 버리고 오른 왕좌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문종은 그 봄, 이미 알고 있었다.
왕이 된다는 것은 결코 혼자일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모두를 만족시키는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것이 왕이라는 자리였다. 아버지가 32년간 짊어졌던 그 무게가, 이제 그의 어깨 위에 놓여 있었다.
그는 등의 종기가 다시 쑤시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빈전에서 아버지의 관이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국상은 끝나지 않았다. 왕이 된 아들의 싸움도, 이제 막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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